그리스 테살로니키 축구장엔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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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은 겹쳐서 왔다. 테살로니키에 어떤 프로축구팀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유럽 챔피언스리그를 볼 수 있게 된 게 첫번째고 '축구장의 철학자'를 만날 수 있었던 게 두번째 행운이었다.

어딜가 11일(한국시간)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벌어진 유럽축구 챔피언스리그 3차 예선 1차전에서 홈팀인 GAK의 마르틴 아메르하우저(左)가 리버풀(잉글랜드) 스테판 핀난의 드리블을 태클로 저지하고 있다. [그라츠 AP=연합]

한국과 그리스의 올림픽 축구가 열리기 하루 전인 10일 밤(현지시간) 테살로니키 연고 프로팀인 파옥(PAOK)과 이스라엘 텔아비브 연고인 마카비의 2004~05 챔피언스리그 3차 예선전이 벌어졌다. 둠바 스타디움에는 4만5000여 관중이 꽉 들어찼다.

티켓이 매진됐지만 무작정 경기장을 찾아 올림픽 취재 AD카드를 보여주고 읍소까지 하면서 겨우 입장할 수 있었다. 옆자리에는 존이라는 52세의 정형외과 의사가 앉아 있었다. 그는 축구를 진정 즐길 줄 알았고 여러 방면에 지식과 경륜이 꽉 들어찬 사람이었다.

"파옥이란 이름에 특별한 뜻이 있는지?"

"1920년대 이곳 마케도니아와 터키 지역에 대규모 인구 이동이 있었지. 당시 네 군데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테살로니키에 정착했는데 그 지명 첫 글자를 한자씩 따 26년 팀을 만든 거지."

90분간의 '전쟁'을 알리는 호각이 울렸다. 초반 파옥이 살핑기니스의 활발한 돌파로 결정적인 기회를 몇 차례 만들었다. 그리스 올림픽팀 소속인 그는 구단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경기에 나섰다. 이천수와 최성국을 섞어놓은 듯한 이 공격수는 90분을 다 뛰어 한국전에 출전하기 힘들게 됐다.

"이건 축구가 아냐. 저렇게 뻥뻥 질러대기만 하니…."

전반 파옥이 어이없이 두 골을 먹자 존의 시름이 깊어졌다.

후반 파옥이 한 골을 만회했다. 대포가 터지는 듯한 함성이 일었다. 존도 껑충껑충 뛰며 좋아했다. 그렇지만 그게 끝이었다. 파옥의 1-2 패배로 경기가 끝났고, 존은 주섬주섬 일어섰다.

"축구는 사람을 저렇게 흥분시키는 힘이 있어. 나는 그 흥분을 즐기면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지. 잘 가게 친구, 행운을 비네. "

테살로니키=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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