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뮤직 다이어리] 메뉴 많아진 일본 대중음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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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최근 휴가차 간 도쿄의 가장 인상적인 풍경은 거리의 뮤지션들이었다. 시부야 거리의 구석구석에서 갈고 닦은 솜씨를 행인들에게 선뵈는 그 젊은이들이야말로 일본 대중음악의 토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르도 다양했다. 얼터너티브 록부터 아카펠라까지 일본 전역의 모든 음악이 이미 거리에 있었다. 거리에서 이름을 알리고 클럽으로 넘어가 결국 주류 음악계로 단계를 밟아 진출하는 시스템은 일본대중음악 발전의 일등 공신이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금단의 영역에 있었던 일본대중음악을 지금 우리도 쉽게 만날 수 있다. 2004년 일본대중문화 개방조치 덕이다. 비록 공중파 방송에서는 들을 수 없다 하더라도 동네 음반 가게에서 아무로 나미에의 음반을 집어드는 건 얼마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모습이 아닌가. 개방 초기에는 엑스재팬, 우타다 히카루 등 이미 국내에서도 충분히 검증받은 대형스타들의 음반이 집중적으로 출시되었다면 최근에는 러브 사이키델리코, 유카리 프레쉬 등 애호가들에게 각광받는 뮤지션들의 작품이 주로 소개되는 추세다. 서구지향적이면서도 일본 특유의 색깔을 갖고 있는, 그래서 세련된 동시에 이국적인 정서를 갖고 있다는 게 이런 음악들의 특징이다.

그 중에서도 에고 래핑의 'Night Food'는 일본 대중음악의 독특한 정서를 집약하는 음반이다. 1999년 '색채의 블루스'라는 곡으로 일본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킨 에고 래핑은 재즈를 기반으로 록과 블루스, 카바레 음악을 버무린 묘한 음악을 들려주는 2인조 혼성듀엣이다. 그들의 최신작인 'Night Food'에서도 동서(東西)와 고금(古今)은 아무렇지도 않게 한 곳에 모여 끈적한 퇴폐의 노스탤지어를 펼친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암울한 데카당스를 이 음반의 그것에 비유할 수 있을까. 동시대의 음악속에 미러볼 돌아가던 카바레의 향수가 생생히 살아있으니 묘한 일이다.

지난 주 열렸던 에고래핑의 내한공연은 열기 그 자체였다. 무대위와 아래의 땀이 함께 섞여 후끈한 수증기가 됐다. 같은 시간 시부야의 젊은이들도 레코드 숍의 청음장치로 'Night Food'를 듣고 있었다. 음악 아래서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아무런 거리도 없었다. 음악으로 느끼는 동시대는 이렇듯 언어의 장벽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음악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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