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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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제7장 노래와 덫

철규가 뜻밖의 사람을 만난 것은 대여섯의 고객을 치러낸 오전 10시경의 일이었다.

장마당의 규모는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컸었는데, 이상하게도 간고등어 매상은 신통치가 않았다.

좌판을 끌고다니며 싸구려를 불러 볼 심산으로 손수레를 수습해서 곡물전을 지나 채소난전이 즐비한 저잣거리로 들어섰다.

장꾼들이 비집고 다녀야 할 통행로는 쌓아 둔 채소들로 두 사람이 겨우 스쳐갈 정도로 비좁을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숙인 채 막무가내로 냅다 손수레를 밀고 나가는데, 정면으로 마주치는 다른 손수레가 있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놀랍게도 박봉환이었다.

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서로의 면상을 물끄러미 마주 보며 말문을 열지 못했다.

거북한 침묵을 깨뜨린 쪽은 한철규였지만, 언사는 도전적이었다.

"비켜. " "당신이 비키소. 내가 왜 비켜요. " 서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인사 치레도 없이 길을 다투는 처지가 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 지나온 맞은편 시장통을 어림해 보았다.

어느 한 편이 양보한다 할지라도 비켜 날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협소했다.

뒤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장꾼들의 독촉이 성화 같았다.

그러나 곧장 멱살잡이가 될 것 같은 두 사람의 상기된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걸음을 멈추고 있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뒷걸음으로 좁은 길을 빠져나가고 있는 사람은 한철규였다.

처음 좌판을 벌였던 술전동 초등학교 앞까지, 한 사람은 뒤로 한 사람은 앞으로 겨우 손수레를 밀고 나갔다.

손수레를 세운 두 사람은 길가의 연석선에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나란하게 앉았다.

한철규가 윗도리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 물자 박봉환 역시 주머니를 쑤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왜 비켜 주지 않았나? 길 맞은편에 있는 의류상점 유리문에 비치는 자신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철규가 심술궂은 한마디를 던졌다.

두 번 세 번 라이터를 고쳐 켜는 소리는 들렸지만 대꾸는 없었다.

제법 시간이 흘렀는데도 서로가 먼저 얼굴을 돌려 상대를 바라보는 법은 없었다.

윤종갑은 어디 있나?

그건 알아서 뭐할락꼬 물어요? 떡고물이라도 줄락꼬 물어요? 설 휜 갈퀴나무처럼 뻗버드름한 대꾸였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나란하게 앉아 있기로 작정한 것 같았다.

꼼짝 않고 쪼그린 채 오금을 펴지 않았다.

장마당은 바야흐로 바람 넣은 고무풍선처럼 부풀어올라 있었다.

지금 당장 장마당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오늘의 매상에 손상 입을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앉아 있는 자세는 시간이 흘러도 고쳐질 줄 몰랐다.

보도 위에 방치해 둔 손수레를 찾아온 장꾼이 상인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오늘 매상이 신통치 않았던 것은 봉환이 탓이었구만, 똑같이 동해바다에서 건져올린 뱃자반인데, 당신네들 뱃자반 뱃속에는 순금반지라도 들어 있습니껴?

곁에서 똬리를 틀고 독기를 뿜어내고 있다면 오늘 장사는 아무래도 땡칠 것 같구만. 주문진 나설 적엔 대한민국 장바닥 돈은 모조리 거둬 먹을 것처럼 억시기 설쳐대더니 아직도 신세 고단한 노점행상은 여전하네요? 거기도 갑부 되지는 못한 것 같구만.

나는 처음부터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 않을 정도만 벌기로 작정한 사람이라요. 당신네들처럼 전국의 눈먼 돈은 예지리 갈퀴로 긁어모을 듯이 가당찮은 꺼꾸렁 욕심 같은 거는 없는 사람이라요. 그런데도 그들은 서로 마주 바라보지는 않았다.

의성마늘로 한몫 단단히 잡았다는 소식을 풍편으로 들은 것 같은데? 어떤 개아들 놈이 그런 개소리 씨부리고 다닙디껴? 뱃구레에 칼 맞을 소리 그만 하소.

아직 모르는 모양인데, 뱃구레 아니라 모가지에 칼을 들이댄다 할지라도 찔끔하지 않게 되었어. 장마당에서 단련 받은 덕택이지. 그나저나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 않을 정도로 벌겠다는 말이 진정이라면, 좌판 덮어 두고 해장술 한 두 잔은 마실 수 있을지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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