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주의 덫에 걸려 경제 성장동력 잃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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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는 평등주의의 덫에 걸려 성장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장이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10일 한국개발연구원과 한.미경제학회가 주최한 '한국 경제의 현안' 국제회의에서다. 좌 원장은 본지와의 별도 전화 인터뷰에서 "이러다가 정말 큰일 나겠다는 위기의식을 느낀다"고 말했다.

좌 원장은 "지금 이 나라는 기본적인 경제원리가 결여된 채 평등주의라는 주술에 걸려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 성장은 스스로 돕는 사람이 대접받을 때 가능한데 1980년대 말부터 획일적 평등을 강조하는 정치가 득세하면서 경제의 역동성이 사라졌다는 분석이다. 그는 "사다리 위.아래에 모두 사람이 있고 노력하면 위치를 바꿀 수 있는 상태가 돼야 성장할 수 있는데 지금 우리 사회는 모든 사람이 나란히 서서 어깨동무를 해야 한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잘하는 사람에게 돈이 몰리다 보면 자연히 경제력 집중이 일어난다"며 "경제력 집중과 독점은 다른 것이며 경제력 집중 없는 성장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차별화를 근간으로 한 시장경제는 필연적으로 결과의 불평등을 낳는다"며 "기회의 평등이 아니라 결과의 평등을 주창하는 민주주의(사회주의)는 시장경제와 양립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그는 "세상 이치(차별화)에 맞지 않고 비현실적인 이상(평등사상)에 기초한 개혁은 반드시 실패한다"며 "모든 정력을 성장보다 재분배에 쏟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중국 경제의 성장 비결도 덩샤오핑(鄧小平)의 선부론(先富論)에서 찾았다. '잘살 수 있는 사람부터 먼저 부자가 돼 앞에서 이끌어야 한다'는 정신이 곧 차별화라는 것이다. 그는 "상대적으로 잘살던 상하이 등에 집중 투자한 중국 정부의 지역개발 방식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며 "우리도 잘하는 지역, 잘하는 기업, 잘하는 대학에 지원을 몰아줘야 하는데 적당히 나눠주는 데 바쁘다"고 지적했다.

기업가들도 인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업인들도 어렵고 힘없으니 도와 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 이만큼 잘하고 있으니까 정부가 더 밀어 달라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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