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리포트]공권력 투입으로 끝난 조계종 분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2면

불교에 '무간지옥 (無間地獄)' 이라는 게 있다.

눈꼽만한 틈새도 없는 영원한 최악의 지옥이다.

듣기만 해도 소름끼치는 이곳은 부모.아라한을 죽인 자와 승단 화합을 깬 자, 부처에게 상처를 입힌 자 등 이른바 5역죄 (五逆罪) 를 범한 자들이 가는 곳이다.

이번 조계종 분규는 저주스럽게도 5역죄 중 네번째 죄인 승가 화합을 깬 사람들을 너무도 많이 양산했다.

조계종사태는 세속 법정이 정화개혁회의측의 쿠데타를 불법이라고 판결, 23일 오전 국가 공권력에 의해 원상 회복됨으로써 40여일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혁명적인 종권장악 기도가 '실패한 쿠데타' 로 끝나고 말았다.

이제 장 담그는 데 들어간 물값은 그만두더라도 물 긷느라 닳은 '짚신값' 은 내놔야 할 게 아닌가.

짚신 값의 계산에 앞서 잠시 저간의 사태 경위를 살펴 보자. 지난 11월 11일 월주 총무원장의 3선출마 저지를 명분으로 한 월탄 총무원장후보의 총무원 청사 점거가 사태의 발단이었다.

단순한 3선 저지가 월하 종정과 월주 원장의 대결로 변질되면서 사태는 종권분규가 돼 종정 - 정화개혁회의 대 (對) 종회 - 총무원이라는 구도를 형성,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대결해 왔다.

이때만 해도 원로회의와 본사 주지들이 하나로 뭉쳐 양자중 한쪽을 받쳐주었으면 사태의 악화를 막을 수 있었다.

이런 와중에서 또한번 사태수습의 전기가 왔다.

바로 11월 19일 월주 원장의 3선출마 사퇴선언이다.

여기서 제29대 총무원장 선거만 실시됐으면 오늘과 같은 승단의 이미지 실추는 막을 수 있었다.

정화회의측의 총무원 청사 점거는 이때부터 최소한의 명분도 없는 '불법' 으로 지탄받기 시작했다.

수습의 마지막 기회였던 11월 29일의 종회 - 개혁회의 - 본사 주지회의 공동참여 비상과도체제안이 성사 직전 무산되고 12월 12일 세속 사법부의 총무원청사 퇴거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졌다.

이제 헤진 짚신값 (승단 화합) 이 문제다.

국민과 불자들의 참단한 심정을 메워주기 위한 급선무는 첫째가 여법한 총무원장 선출이고, 둘째는 깨진 승단 화합의 복원이다.

특히 일부 본사에서 분규 막판에 보여준 '막가파식' 의 주지 쟁탈전은 악몽의 대처승 정화시절을 떠올리게 한 추태다.따라서 그같은 작법 (作法) 은 즉각 중단돼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 오늘의 조계종단이 내놓아야 할 짚신값은 승단의 화합이다.

끝으로 조계종의 법맥인 임제선 (臨濟禪) 개산조 임제의현 선사의 스승인 황벽희운 (?~850) 선사가 제자들을 경책 (警策) 했던 다음과 같은 상당 법문의 일부를 되새겨본다.

"모두가 술찌끼나 먹는 놈들 같구나. 이렇게 행각을 하다가는 남들에게 비웃음이나 당하리라. 너희들이 이미 행각을 하고 있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이 큰 당나라 안에 선사가 한사람도 없다는 사실 (大唐國里無禪師) 을 알겠는가!"

이은윤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