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서 400년 조선의 넋, 이제 한 푸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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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일본 교토의 이총(귀무덤)에서 위령제가 열렸다. 남원국립민속국악원 무용수들이 살풀이를 추며 조선인의 혼을 위로했다.

“위대한 조선의 의병들이시여! 민초들이시여! 귀와 코를 베어 가도 그 얼굴은 조선의 하늘에 빛나도다.”

13일 일본 교토의 이총(耳塚·귀무덤)을 찾았다. 이곳은 약 400년 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숨진 조선 수군과 백성의 귀와 코가 묻힌 곳이다. 당시 왜군은 소금에 절여서 일본으로 가져간 이 ‘전리품’의 숫자에 따라 영지와 상을 받았다. 이총에 묻힌 조선인 귀·코의 숫자만 무려 12만6000여 명분에 달한다고 한다. 적의 손에 죽어서, 적의 땅에 파묻혀버린 이들의 영혼이 400년이 흘렀다고 편히 잠들었을까.

이날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이사장 한양원)는 그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제를 열었다. 민족종교협의회 회장도 맡고 있는 한 이사장은 “멀리는 임진왜란, 가까이는 일제침략기에 이르기까지 한·일 관계는 전쟁과 갈등의 연속이었다. 그건 무력과 전쟁에 의지해 천하를 얻으려는 서세동점(西勢東漸·서양 세력이 동양으로 밀려옴) 시대의 연속선상에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동세서점(東勢西漸)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며 “역사 속에서 맺혀버린 영령들의 한을 풀고, 새로운 미래를 맞고자 위령제를 연다”고 말했다.

지금껏 이총의 위령제는 초라한 수준이었다. 교토에 사는 재일동포 몇몇이 모여 조촐하게 제를 올리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오사카와 교토에서 재일동포 140여 명이 참석했다. 한국에선 추모 공연단도 건너갔다. 염경애 명창은 귀무덤 앞에서 판소리로 추모시를 읊었다. “적들이 물러난 고국강산을 다시 보지 못하고/400년간 남의 땅에 묻힌 그 한을 어찌 다 말로 하리~오….” 간장을 찢는 소리에 참석자들의 눈망울이 시큰해졌다.

이어 살풀이춤이 올랐다. 약 7m 높이의 커다란 귀무덤 앞에서 흰 저고리와 흰 치마, 흰 수건이 서로 섞이고, 펄럭이고, 돌아갔다. 남원국립민속국악원 무용수들은 ‘승천무’를 췄다. 혼을 부르고, 위로하고, 다시 하늘로 올리는 진혼무(鎭魂舞)였다. 살풀이춤을 출 때는 흐린 하늘에서 잠시 빗방울이 떨어지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이게 영령들이 흘리는 진혼의 눈물이라고 믿고 싶다”고 말했다.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는 ‘이총’을 고국으로 옮기는 방안도 고대한다. 그러나 ‘이총’은 현재 일본의 사적지로 지정돼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직접 관련된 교토의 문화재로 보기 때문이다.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는 5월에 도쿄의 문화청(문화재청에 해당)을 방문, ‘귀무덤’의 한국 이전을 타진해보기도 했다.

한 이사장은 “임진왜란 때 울돌목 전투에서 숨진 왜군이 해안가로 떠내려 왔다. 그때 조선 백성이 왜군의 시신을 거둬 진도에 묻었다. 지금도 진도에 100여 기의 무덤이 있다. 당시 이 지역으로 출정했던 왜군의 후손들이 요즘도 와서 제사를 지낸다. 진도의 왜군 무덤과 교토의 귀무덤을 서로 반환하자고 제의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일본 문화청은 “연구해볼 만한 제안이다. 그러나 ‘이총’은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국회에서 문화재 관련 법규를 바꾸지 않는 한 이총의 이전은 어렵다”며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이날 위령제에는 교토시 문화재보호과장이 직접 참석, 귀무덤에 헌화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가 ‘이총 위령제’를 찾기는 처음이다. 그만큼 일본 측에서도 신경을 쓰고 있다는 방증이다.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는 매년 교토를 찾아 ‘이총 위령제’를 열 계획이다.

교토 글·사진=백성호 기자

◆이총(耳塚)=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숨진 조선 수군과 백성의 코와 귀무덤.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 수하의 왜군은 무겁다는 이유로 목 대신 조선인의 코와 귀를 베어 소금에 절인 뒤 일본으로 가져갔다. 도요토미는 그 수에 따라 상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코와 귀를 모아 이곳에 묻었다. 이총 위에는 석탑 모양의 석물이 얹혀져 있다. 조선인 원혼들의 기를 누르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귀무덤에서 불과 100여m 떨어진 곳에 도요토미를 기리는 신사가 있다. ‘이총’은 일본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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