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사설

북 조문사절, 남북 관계 개선 계기 되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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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북한이 신속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서거 다음 날 새벽 김정일 국방위원장 명의의 조전을 보낸 데 이어 어제는 당비서·부장 등이 포함되는 고위급 조문사절을 보내겠다고 통보해 왔다. 김 위원장과 분단 이후 최초로 정상회담을 한 것을 비롯해 남북 간 화해와 협력 증진을 위해 애썼다고 보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걸맞은 조문 예우를 갖추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아직 절차 문제가 남아 있지만, 바람직한 일이라고 본다. 특히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평양 방문 결과로 이산가족 상봉과 금강산·개성 관광 등 중단된 남북 간 교류 협력 사업들이 회복될 조짐이 보이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우리는 북의 조문사절단 파견이 남북 관계를 한 차원 높이 개선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려면 북측이 좀 더 남측 입장을 이해하려는 전향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본다. 김대중 전 대통령 영전에 조문사절을 보낸다는 것은 그가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품고 실천하려 했던 가치를 기리고 존중하겠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 가치란 남북이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서로 이해하고 도와주려는 상부상조의 정신일 것이다. 예컨대 남측 관광객이 북한 군인에 의해 피살된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기 위해선 북측이 어떤 식으로든지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게 남측의 절대적 여론이다. 김 전 대통령도 생전에 “도망가는 여자의 등에다 대고 총을 쏜 것은 엄연히 북한이 잘못한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북한 남측 민간인 사업가인 현정은 회장에게 ‘편의와 안전보장 조치’를 약속한 것만으로 넘어가려고 해선 곤란하다. 남북 당국 간 회담을 통해 납득할 만한 결과를 끌어내야 가능해지는 것이다. 더 나아가 개성공단의 확대 등 남북 관계의 전면적 발전을 꾀하려면 궁극적으로 핵 포기 결정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북측이 기왕에 남북 현안을 풀겠다고 밝힌 만큼 당국 간 원활한 협의를 위한 채널을 조속히 복구할 것을 촉구한다. 남측 민간만을 상대하고 당국을 외면하는 자세로 일관하면 북측이 남북 관계 개선보다는 남측 사회의 분열을 기도한다는 의심만 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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