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뉴스] 노동계의 하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1. 그들의 싸움 한가운데
제가 있습니다.
저를 위해 시작한 싸움은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시민의 안전',
'요금인상 철회'
그들의 투쟁의 명분에는
늘 제가 등장합니다.

그러나 저를 위한다는
뜨거운 싸움터 그 어디에도
저는 없었습니다.

저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선량한 시민'입니다.

#2. 월급 많이 받는 그분들은
불만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저도 불만이 없었습니다.
그쪽에서 일감 받아
먹고살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분들도
한번 화내니 무섭더군요.
원하는 걸 안 들어준다고
회장 처형극을 하는 걸 보면.

그분들이 그러는 동안
제 일감도 끊겼습니다.
그러니 제가 불만 없겠습니까.

저는 LG칼텍스정유의
'선량한 하청업체'입니다.

#3. 이젠 정규직 노조도
정신차리나 했습니다.
지난해부터 비정규직 보호를
외쳐대 내심 기대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구호는 그럴 듯하게 외치곤
협상 땐 임금인상이 먼저,
수당.기본급 인상, 인상….

비정규직과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역시 제 밥그릇이 중요한가요.

저는 호소할 데 없는
'선량한 비정규직'입니다.

*노동계의 하투(夏鬪)가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고임금 정규직 근로자들의 투쟁에 여론이 등을 돌린 것이 큰 영향을 줬다.

김은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