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미술관옆 동물원' 주인공들 감성연기 돋보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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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사랑이란게 처음부터 풍덩 빠져버리는 건 줄만 알았지, 이렇게 서서히 물들어가는 것인 줄은 몰랐어. "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 (각본.감독 이정향)에서 여주인공 춘희 (심은하) 의 짧막한 이 대사는 알쏭달쏭한 영화의 제목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설명한다.

성격이 너무 다른 '미술관' 과 '동물원' 을 '옆' 으로 나란히 사이좋게 놓은 것엔, 사랑이란 이질적인 것들이 만나 결국엔 서로에게 '물들어가는 것' 이라는 감독의 시선이 나타나 있다.

자신은 정작 짝사랑으로 속을 태우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결혼식 비디오 촬영을 하며 사는 춘희. 철수 (이성재) 는 제대를 앞두고 애인 다혜를 찾아오지만 그녀는 떠나고 방의 새 주인 춘희와 마주친다.

떠나간 애인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춘희의 방에 눌러앉고, 그를 모질게 내몰지 못한 춘희는 그와 함께 공모전에 낼 시나리오를 쓴다.

처음엔 이성간의 감정조차 없었던 두 사람의 열흘간의 동거. 그리고 어느새 '옆' 으로 다가서 있었다는 두 사람의 얘기. 이감독은 "청춘남녀의 사랑얘기를 다루고, 누가 죽거나 다치는 사건이 없으며 등장인물이 모두 착한 이 스토리엔 상업적 고려가 배어있다" 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한 편으로 선인 대 악인의 갈등없이도 얘기를 풀어나갈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고. 독특한 남녀 캐릭터에 대한 상세한 묘사와 이들이 주고받는 생생한 대사는 영화에 아기자기함과 신선함을 불어넣은 중요한 요소다.

외모에 무신경하고 덜렁대지만 내면은 귀엽고 순수한 춘희, 뻔뻔스럽지만 마음이 여린 철수의 충돌엔 분명 관객들을 매료시키는 남다른 힘이 숨어있다.

두 사람이 함께 쓰는 시나리오의 주인공 인공 (안성기) 과 다혜 (송선미) 의 사랑을 통해 영화속 영화얘기를 펼쳐보이는 '액자구조' 는 관객으로 하여금 춘희와 철수의 내면을 훔쳐보게 하는 또다른 재미를 보탠다.

15평 원룸에 공존하는 현실의 철수와 춘희와는 달리 자연을 배경으로 한 '영화 속' 인공과 다혜의 몽환적 사랑이 주는 대비엔 사랑에 대한 은유의 미학이 반짝인다.

이 영화가 주는 새로운 발견은 중성적 캐릭터의 춘희역을 천연덕스럽게 '자기것' 으로 만든 심은하의 연기가 아닐까. 미술관과 동물원 표지판아래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의 라스트 신. 첫 입맞춤을 받으며 한없는 쑥스러움에 귀엽게 찡그린 그녀의 표정은 이 영화에 코믹하고 따뜻한 마침표 역할을 톡톡히 한다.

19일 개봉.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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