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의 큰스님 선문답]5.성수 선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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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낙엽 진 텅 빈 산속, 사람은 보이지 않고 체로금풍 (體露金風) 만 스치는데 지는 햇빛 산속 깊숙히 들어와 바위 위 푸른 이끼를 다시 비춘다.

늦가을 덕유산 굽이 굽이 맑은 계곡물을 끼고 경남 함양군 안희면 황대마을의 황대선원 (黃垈禪院) 을 찾아가는 길의 풍광이다.

간간이 나타나는 산촌 (山村)에는 까치밥으로 남겨 놓은 감나무 꼭대기의 홍시 (紅枾) 들이 손대면 톡하고 터질 것만 같다.

저 홍시들은 까치가 먹고도 남으면 하얀 눈과 함께 허공속으로 떨어져 흙바닥에 녹아 흐르다가 끝내는 자신을 비워버리리라. 마치 진흙소 (泥牛)가 바다에 뛰어들어 녹아 없어지듯이 말이다.

덕유산 끝자락 시내가의 아늑한 마을안 고목 느티나무 옆에 자리한 황대선원은 의외로 건축 공사장 가림막이용 철판의 가건물 몇채로 구성된 절이었다.

이 토굴의 암주 (庵主) 인 성수 (性壽.75) 노장은 얼마전까지도 만행 (萬行) 을 멈추지 않던 운수행각 (雲水行脚) 의 납자였다.

[대담=이은윤 종교 전문위원]

문 : 황대마을 영수 (靈樹) 의 과일이 다 익었습니까.

답 : 보살년들이 돈 막 갖다줘 중들 다 베릿 (버렸) 다.

<질문은 매우 상징적이고 형이상학적이다.< p>

우선 질문이 뜻하는 바를 직설적 표현으로 바꾸면 "성수선사, 당신의 제자들이 다 견성 (見性) 을 해서 도인이 됐느냐" 는 다그침이다.

신령스런 나무는 성수노장을, 과일은 그의 제자들을 가리킨 은유적 표현이다.

성수노장의 대답은 돈이 흘러넘쳐 오늘의 불교 현실을 망치고 있다는 개탄이다.

그래서 그는 붉은 벽돌로 30평의 선방을 지었는데 '춥고 배고파야 공부한다' 는 옛말을 따라 일체의 난방을 하지 않았다.

동지 섣달 추위속 동안거 (冬安居 : 음력10월15일~다음해 정월 15일) 의 참선수행을 냉방에서 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보살들이 선방에 보일러를 놓고 뜨겁게 불을 지펴주자 납승 (衲僧) 들의 용맹정진이 해이해져 졸음만 졸고 있단다.

선은 이같이 '형이상' 의 체 (體 : 본질.정신.이상) 를 내밀면 '형이하' 의 용 (用 : 현상.육체.현실) 으로 되받아 치는 묘기를 곧 잘 연출한다.

이를 선학에서는 체용일여 (體用一如) , 또는 회호 (回互) 의 원리라 한다.

교학은 호환 (互換) , 또는 왕환 (往還) 이라고도 하는 회호의 원리를 이것과 저것이 서로 자기를 버리고 상대방과 하나가 되는 파도이면서 물이고 물이면서 파도인 관계 (相卽) 를 이루는데 충돌이나 걸림이 없는 융합 (相入) 으로 설명, '상즉상입' 이라 한다. >

문 : 들어오다 보니 고목나무에 산새들이 모여 앉아 지저귀는데 "숲속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할래" 라고 하던데요…

답 : 나는 잡초더미로 들어가고 너는 숲속으로 들어간다.

<잡초더미는 현실.번뇌를, 숲속은 이상.보리 (菩提) 를 각각 상징한다.< p>

지저귀는 고목나무의 산새들은 수행정진하는 학인들이다.

초발심의 수행자들은 으례히 조용한 곳을 찾는 답시고 깊은 산중의 토굴로 들어간다.

그러나 이른바 깨쳤다는 한 소식한 도인이 되면 세속으로 돌아와 세간의 고통과 아픔을 같이하면서 중생의 삶을 산다.

이것이 바로 보살행이라는 것이고 '깨달음의 사회 환원' 이다.

성수노장은 포단 옆에 놓인 주장자 (柱杖子) 를 곧추 세워 선승의 위엄을 갖추고는 다음과 같은 자신의 체험담을 들려주었다.

50년대 말 부산 범어사 근처의 한 암자 주지를 하다가 정진을 하겠다고 깊은 산속 빈 암자를 찾아 들어갔다.

바랑을 풀고 가부좌 참선을 하고 있는데 하루는 산나물 캐는 아주머니가 다가와 물었다.

"왜 이리 깊은 산속에서 혼자 사십니까. " 그는 "내가 살던 곳은 시끄러워 조용한 산속에 들어와 공부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아주머니는 성수납자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이 산속의 새 소리, 물 소리는 시끄럽지 않단 말입니까" 고 반문했다.

이때 골통을 철퇴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끼면서 온 몸에 기운이 싹 빠지는 사경 (死境)에 떨어졌다가 깨어나 그 길로 바랑을 지고 하산했단다.

그는 해인사 총림 수좌시절 "문수야, 부처를 푹 삶아 대중공양을 하라" 는 효봉선사 (1888~1966) 의 상당법어를 듣고 "천하만물이 선 아님이 없고, 세상만사가 도 아님이 없다 (天下萬物無非禪 世上萬事無非道)" 는 깨침의 노래 (悟道頌) 을 이미 토했건만 그만 실천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효봉선사가 법문후 한 마디씩 일러보라고 하자 일주일 동안 조실방을 열네번이나 가도 문을 열어주지 않기에 하루는 문 앞에서 "도 (道) 를 가져왔습니다" 라고 고함을 치고는 오도송을 토해냈다.

성수수좌는 이에 앞서 3일 동안 재래식 뒷간에서 거적을 깔고 단식을 하면서 '나도 기어코 깨쳐 조실이 되겠노라' 고 이를 악물고 정진했다.

그러자 몸이 벌겋게 달아 올라 도반들이 와서 떼미고 나왔는데 그 때 몸의 열이 확 식으면서 날아갈 듯한 쾌감을 느꼈단다. >

문 : 어떤 것이 자기 존재의 일상 (日常) 을 똑바로 알아 할 일 없는 편안한 사람 (無事是貴人.了事漢) 입니까.

답 : 동지 섣달의 부채다.

< '무사시귀인' 이란 할 일을 다 마쳐 한없이 편안한 가운데 무위자연 (無爲自然) 을 즐기는 해탈 도인을 말한다.

이러한 도인을 선지식 (善知識) 이라 한다.

그런데 성수노장은 선지식을 하찮은 '부채' , 그것도 동지 섣달에는 전혀 쓸모가 없는 부채에 비유했다.

언뜻 보기엔 괴팍한 선승들의 억지다.

그러나 한여름철 요긴하게 쓰이고 겨울이 돼서는 쓸모 없는 물건으로 구석에 쳐박혀 다음 해 여름을 기다리는 부채의 한가한 겨울철이야 말로 유한자재 (有閒自在) 한 도인의 모습이 아닌가.

깊은 산속 대목 (大木) 은 큰 집을 지을때나 쓰인다.

도인은 아무리 바빠도 자신만의 한가한 여유를 잃지 않는다.

'삼동선자 (三冬扇子)' 라는 화두는 견성 도인의 본성을 흔한 일상 생활용품을 통해 아주 멋지게 밝혀 준 비유다. >

문 : 스님께서는 깨치셨습니까.

답 : 어제와 오늘이다.

<선에서는 깨달음을 얻었다느니, 견성을 했다느니 하는 것도 천리만리 어긋난 외도 (外道) 다.< p>

왜냐하면 선리 (禪理.도) 는 늘 우주에 가득차 있기 때문에 못쓰고, 못보는게 바보일 뿐 다른 도리란 없다.

성수노장의 대답은 장소 따라 똥누고 오줌 누는 것을 가릴줄 아는 일상생활이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으면 깨달음이고 '정상' 이라는 얘기다.

'평상 (平常)' 을 관념적으로만 이해하는 것과 체험적으로 납득한다는 것은 전혀 다르다.

그는 젊은 시절 한참 깨쳤다는 자만에 들떠 석장 (錫杖) 을 짚고 으시대며 산골 촌락을 지나다가 마당가에 모여 놀던 꼬마들 중 한녀석이 "애들아, 저기 중 지나간다" 고 소리치자 모두 일어나 "중봐라, 중봐라" 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는 순간 앞이 콱 막혔던 일을 회상했다.

이때 그는 자신이 섬돌 밑의 작은 벌레만도 못하다는 부끄러움을 느껴 쓰고 있던 방갓과 석장.장삼을 벗어 불지르고 산속으로 도망쳐 잡곡 생식을 하면서 용맹정진을 했다고 한다. >

문 : 가건물 불당이지만 불상을 모셔놓고 있는데 저 부처는 얼마나 한 영험을 가지고 있습니까.

답 : 동구 (洞口) 의 고목나무다.

<이 문답은 한마디로 불법 진리를 자연으로부터 배우라는 일할 (一喝) 이다.< p>

실은 그가 작성자였다는 성철전조계종 종정의 유명한 종정 취임 법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라는 현성공안 (現成公案 : 평상심의 눈으로 보면 자연만물이 모두 진리 당체라는 현실수용의 화두) 도 자연법이 (自然法爾) 를 일깨우려는 것이었다.

성수노장은 산골 동네 꼬마들한테 혼이 난 후로 들판을 지나다가 누렇게 익어서 머리를 숙인 벼나 보리 이삭을 보면 엎드려 3천배 (拜) 를 했단다.

선사들은 모든 해답은 자연속에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자연을 최소한 인간과 동격시했고 나가서는 위대한 가르침을 주는 '스승' 으로 받들었다.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2세도 1997년 7월 이탈리아 돌로미테 산악 휴양지의 일요 미사 강론에서 "인간은 자연의 경외로움을 통해 신의 위대함을 느낄수 있도록 명상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고 역설했다.

마치 옛날 한 선사의 가르침을 오늘에 새삼 듣는 감회를 갖게 하는 교황의 강론이었다. >

문 : 부처는 자기 안에 있다는데 스님께서는 왜 그리 숱한 만행을 하고 아침 저녁 예불을 열심히 하십니까.

답 : 부처한테 몽땅 속았다.

<성수노장의 그칠 줄 모르는 만행에는 일화가 많다.< p>

80년대 후반 통일교 교주 문선명목사의 미국 자택서 한달 동안 침식을 같이 하며 지냈고, 60년대에는 기독교 박태선장로의 신앙촌서 박장로와 3일간 함께 생활해 보기도 했다.

또 가톨릭의 신앙생활을 체험하기 위해 신부.수녀와 함께 한방에 자면서 살아보기도 했단다.

그의 젊은 시절 만행중 하일라이트는 삼성그룹 이병철 (李秉喆) 선대회장을 만났던 일이다.

가까스로 3분간의 면회를 허락받은 성수수좌는 단도직입적으로 "회장님의 돈버는 비법을 배운 후 전 국민에게 가르쳐 주어 중생 모두가 잘 살게 하고자 한다" 고 했다.

이회장은 그의 갸륵한 자비심에 감동,점심까지 회장실로 시켜다 먹으면서 3시간동안 이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가 당시 이회장으로부터 배운 경영철학은 사업보국 (事業報國) 과 '도둑놈을 사람 만들어 쓰는 재주' 였다.

지금도 그는 이회장의 간단명료한 용인술이 생동하는 중생제도의 실천이요 선림이 강조해 오는 활구 (活句) 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성수수좌는 그처럼 사모하던 부처님한테 속은 것만 같은 기분이었단다.

시간을 세월속에 묻고 담론 (談論) 을 하다 보니 밖에 어둠이 깔렸다.

합천 해인사까지 가야 할 여정이 남아있어 서둘러 자리를 일어섰다. >

[성수선사는…]

▶1923년 경남 울주 출생.법호는 활산 (活山) , 법명은 성수

▶1944년 : 부산 내원사서 성암 (性庵) 선사를 은사로 득도

▶1948년 : 범어사서 동산스님으로 부터 구족계 수지

▶1967년 : 조계종 총무원 포교부장.조계사 주지

▶1968 - 1972년 : 범어사.해인사 주지

▶1978년 : 세계 불교지도자 대회 한국측 대표

▶1981년 : 조계종 총무원장

▶1994년 : 조계종 원로회의 의원

▶현재 : 황대선원 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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