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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프런트] 한국 기생충박사 1호, 탄자니아 섬 감염률 30% 줄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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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임 교수는 한국 기생충 박사 1호다. 1960년대 초반 기생충 대변 검사의 기준을 만들었다. 한 해 두 차례 전국 학교에 돌았던 채변 봉투도 그가 개발했다. 그래서 ‘채변 봉투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런 그가 민득영(67) 을지대 석좌교수, 채종일(57) 서울대 교수, 엄기선(54) 충북대 교수, 용태순(50) 연세대 교수 등 제자들을 이끌고 2005년부터 매년 두 차례 이상 탄자니아 코메섬을 찾고 있다. 국제구호단체 굿네이버스와 함께 기생충 퇴치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굿네이버스 의료팀과 탄자니아 국립의학연구소 직원들이 이진다보 초등학교의 한 교실에서 기생충 검사를 한 뒤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오른쪽부터 장수영 굿네이버스 탄자니아 서부지부장, 용태순 연세대 교수, 임한종 고려대 명예교수, 엄기순 충북대 교수. 이날 초등학생 100여 명과 인근 주민 30여 명이 검사를 받고 기생충 약을 먹었다. [굿네이버스 제공]

탄자니아 북부 코메섬의 인구는 5만 명. 3개 나라와 국경을 마주 댈 정도로 큰 빅토리아 호수 위에 떠 있다. 임 교수 팀이 이 섬을 주목한 것은 호수에 사는 주혈흡충 때문이다. 주혈흡충은 피부를 뚫고 들어가 장기에 기생한다. 일단 감염되면 장기가 딱딱해지면서 기능이 저하돼 심하면 목숨까지 앗아간다.

에드윈도 호수를 통해 기생충에 감염됐다. 집에 수도가 없는 에드윈은 호수에서 빨래를 하고, 목욕을 하고, 또 그 물을 마신다. 임 교수가 찾기 전만 해도, 호수 물에 의존해 사는 섬 주민들은 거의 주혈흡충에 감염돼 있었다. 5년 사이에 감염률은 30% 이상 줄었다.

임 교수 팀은 감염 기간이 길지 않은 학생들에겐 채변 검사를 해 기생충약을 나눠준다. 한 알만 먹어도 몸 안에 있는 주혈흡충은 쉽게 퇴치할 수 있다. 문제는 어른들이다. 대부분 감염 기간이 길어 장기 기능이 저하된 상태다. 옆방에서 초음파로 어부 샤드락 세게이지(25)의 간을 검사하던 용태순 교수가 혀를 찼다. 용 교수는 희끗희끗한 간 초음파 사진을 가리키며 “흰 부분은 기생충 때문에 딱딱해진 것”이라며 “전문 병원이 없어 치료 받을 방법이 없다”고 했다.

임 교수는 1995년 고려대 의대를 정년 퇴임한 이후 해외로 눈을 돌렸다. 60년대만 해도 95% 수준이던 국내 기생충 감염률은 지금은 3% 수준. 우리나라는 97년에 이미 세계보건기구가 공인한 기생충 퇴치국이 됐다. 그는 90년대 중반부터 중국 변방의 자치구 3곳에서 10년, 라오스에서 5년 동안 기생충 퇴치 작업을 벌였다. 중국에서만 5만여 명에게 기생충약을 먹였고, 그 공로로 중국 정부에서 세 차례 훈·포장을 받았다.

최근 그는 부쩍 기력이 쇠약해졌다. 채변 검사를 하는 시간 이외엔 의자에 가만히 앉아 눈을 감고 쉰다.

탄자니아에서 그가 이루고자 했던 꿈이 이 곧 실현된다. 외교통상부의 국제빈곤퇴치기여금 18억여 원을 지원받아 코메섬이 소속된 므완자 지구에 전문병원을 내년 여름 세우게 됐다. 또 주민들이 호수 물을 마시는 것을 막기 위해 굿네이버스와 우물 파기 사업도 벌이기로 했다. “아직 기생충에 시달리는 나라가 많은데… 건강이 얼마나 허락할지 걱정입니다.” 후원 문의 굿네이버스 02-6717-4000.

탄자니아 므완자=정선언 기자

병원 운영 맡은 존 창가루차 소장
“기생충전문병원, 아프리카인 삶 바꿀 것”

므완자 열대성질병전문병원 운영을 맡은 존 창가루차(51·사진) 탄자니아 국립의학연구소장은 지난달 30일 인터뷰에서 “에이즈와 달리 전염성이 없어 선진국이 관심을 보이지 않는 기생충 문제 해결에 한국이 처음으로 뛰어들었다”며 “열대성 질병 전문병원이 탄자니아, 나아가 아프리카 사람의 삶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창가루차 소장과의 일문일답.

-코메섬 사람들이 기생충에 감염되는 경로는.

“섬에는 화장실이 없어 인분 등을 통해 기생충이 빅토리아 호수로 흘러들어간다. 코메섬 사람들에게 호수는 삶이다.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고 빨래를 하고 그릇을 씻고 목욕을 한다. 호수 물을 마시기도 한다.”

-기생충병 치료를 위한 시도가 없었나.

“2005년 빌 게이츠가 세운 ‘빌 앤드 멀린다 재단’의 지원으로 2년간 기생충약을 투약했다. 그러나 학교에 다닌 학생만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제한적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기생충병은 약을 한 번 먹는다고 완치되는 게 아니다. 지속적인 관리와 환경 개선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 의료팀이 추진하는 우물 사업과 전문병원 설립 등은 의미가 크다.”

-코메섬에 외국 의료팀이 온 적은 없나.

“1984년부터 10년간 스웨덴 연구팀이 코메섬에 왔었다. 그러나 기생충 연구만 했을 뿐 치료 활동은 하지 않았다.”

-기생충 전문병원은 어떤 일을 하나.

“세계 최초의 전문병원은 자금을 지원한 한국 정부와 구호 경험이 풍부한 한국 NGO, 그리고 한국 의료진이 만든 합작품이다. 한국 정부는 5년간, 굿네이버스는 12년간 지원하기로 했다. 우리 의료진은 한국의 의료 기술뿐 아니라 운용 시스템을 적극 도입할 것이다.”

정선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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