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은 25야드 14번 홀 이글 샷 우즈 ‘역전 불허’14연승 끝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8면

타이거 우즈右가 13번 홀에서 버디 퍼팅을 놓친 뒤 고개를 떨어뜨리며 아쉬워하고 있다. 왼쪽은 양용은. [채스카 AFP=연합뉴스]

세계랭킹 110위가 1위를 때려눕혔다.

백의민족을 상징하는 ‘흰 셔츠’를 입은 양용은(37·테일러메이드)이 ‘붉은 셔츠의 공포’ 타이거 우즈(미국)를 무릎 꿇린 것이다. 한국 골프 112년사에 길이 빛나는 쾌거였다.

‘바람의 아들’ 양용은이 아시아인 최초로 메이저 대회를 제패하며 대한민국 골프 역사를 새로 썼다.

세계랭킹 1위 우즈, 메이저 대회에서 14승이나 올렸고 특히 4라운드 선두로 나섰을 때 역전패를 당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는 ‘골프 황제’ 우즈가 양용은에게 생애 처음으로 무릎을 꿇은 것이다.

양용은은 17일(한국시간)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인 PGA챔피언십에서 선두를 달리던 우즈를 꺾고 워너메이커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우즈에게 2타 뒤진 공동 2위로 최종 4라운드를 시작한 양용은은 이날 이글 1개에 버디 2, 보기 2개로 2언더파를 쳤다. 합계 8언더파를 기록한 양용은은 이날 3타를 잃고 무너진 우즈(5언더파)에게 3타 차의 통쾌한 역전승을 거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쾌거였다. 상대가 우즈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은 현실이 됐다.

양용은은 한국 남자골프의 간판 최경주(나이키골프) 등 숱한 선수들이 이루지 못했던 꿈을 PGA투어 진출 2년 만에 일궈냈다. 이로써 ‘아시아계는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하기 힘들다’는 그동안의 고정관념을 시원하게 깨버렸다. 1897년 영국인들이 함경도 원산세관 안에 6홀을 만들어 골프 경기를 한 것을 한국 골프의 원년이라고 한다면 그로부터 112년 만에 메이저 대회 챔피언을 배출한 셈이다. 이날은 KPGA투어 고문인 한장상(68) 프로가 1973년 마스터스에 첫 출전한 이래 36년 만에 그 문을 열어젖힌 ‘골프 광복절’이기도 했다.

역대 한국 선수 중 메이저 대회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던 건 2004년 최경주의 마스터스 3위였다. 아시아 선수 가운데서는 후안루량(대만)이 71년 브리티시오픈에서 준우승, 이사오 아오키(일본)가 80년 US오픈에서 2위, 천제충(대만)이 85년 US오픈에서 공동 2위에 오른 것이 최고였다.

제주도에서 농사를 짓던 가정에서 태어나 힘들게 골프를 계속해 온 양용은은 2006년 우즈가 출전했던 유러피언투어 HSBC챔피언스에서 우승한 데 이어 이날 다시 우즈와 맞대결을 펼친 끝에 정상에 오름으로써 ‘타이거 킬러’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지난 3월 PGA투어 혼다 클래식에 이어 PGA투어에선 2승째다.

매치플레이나 다름없이 진행된 이날 승부는 14번 홀(파4·301야드)에서 갈렸다. 양용은의 티샷은 그린 주변의 벙커 바로 옆에 걸렸고, 우즈의 티샷은 벙커에 빠지고 말았다. 양용은은 25야드를 남기고 침착하게 칩샷을 해 그대로 홀 속에 공을 집어넣었다. 승기를 잡는 이글샷이었다. 우즈가 버디로 응수했지만 양용은은 1타 차 단독 선두로 나서며 리더보드 맨 위로 올라섰다.

최창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