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희의 스토리가 있는 명품<15> 브레게 포켓 워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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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어느 날, 우연히 잡지를 보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시계를 발견했다. 2008년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적 시계보석박람회인‘바젤 페어’에서 소개된 브레게(Breguet)의 ‘앙투아네트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포켓워치’(사진)가 바로 그것.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시계를 보는 순간 ‘이렇게 아름다운 시계가 세상에 또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프랑스 비운의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와 관련된 사연을 알고 나서는 경외심까지 생겼다.

16세기 당시 패션아이콘이었던 마리 앙투아네트. 그가 ‘브레게’를 특히 좋아한다는 사실을 안 어느 귀족이 브레게를 찾아갔다. ‘왕비에게 선물하기 위해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정교하며 아름다운 시계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한 것이다. 그리고 이퀘이션 타임과 퍼피추얼 캘린더·온도계·크로노그라프와 파워리저브·인디케이터를 장착한, 놀랄만큼 복잡하고 정교하며 멋진 시계가 탄생했다. 하지만 정작 시계가 완성되었을 때 앙투아네트는 이미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뒤였다.주인을 잃은 시계는 부유한 유대인 보석상의 손에 들어갔고, 후일 그는 그 시계를 예루살렘 박물관에 기증했다. 1983년 이 시계가 박물관에서 도난당했다.

비슷한 시기에 앙투아네트의 별장 ‘쁘띠트리아농’에서도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앙투아네트가 특히 좋아해 그늘 밑에서 자주 시간을 보냈던 오크나무가 시름시름 죽어가고 있었던 것. 이 사실을 알게 된 스와치 그룹의 니콜라스 G. 하이엑 회장(브레게는1999년 스와치 그룹에 합병되었다)은 쁘띠트리아농의 복원 및 오크나무를 살리기 위한 사업에 열정을 바치기로 하고 앙투아네트 시계 또한 다시 제작하기로 했다. 그 후44개월만에 그때 그 모습으로 ‘앙투아네트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포켓워치’가 다시 완성됐다. 그리고 2008년 ‘바젤 페어’에서 아름다운 모습이 공개됐다. 쁘띠 트리아농에서 자라는 오크나무로 만든 케이스에 담겨서 말이다. 앙투아네트에게 넘겨지지 못하고 사라진 시계가 몇 백 년의 세월이 지나 그녀가 낮잠을 즐기던 오크나무의 품에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이 시계는 현존하는 가장 복잡하고 정교한 세계 5대 시계중의 하나로 꼽힌다.

23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핸드메이드 시계 브랜드 ‘브레게’.국내 매장은 개당 2000만원에서 2억~3억원에 이르는 시계를 보유하고 있고, 본사에는 20억원대 제품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토리가 있는 명품은 아름답다. 브레게의 마리 앙투아네트 포켓워치는 그래서 더 아 름답고 가치 있게 느껴진다. 비록 시계가 내 손목에 채워질 날을 기약할 순 없겠지만 시계를 보며 관련된 이야기에 감동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명품의 힘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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