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예산쟁점]'5조원 구조조정'밤샘절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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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회는 2일 사상 최대 적자규모인 새해 예산안을 놓고 밤 늦게까지 진통을 거듭했다.

예결특위는 예산안의 대폭 구조조정을 주장하는 한나라당과 새 정부 첫 예산의 원안 통과를 고수하는 국민회의.자민련의 입장이 맞선 가운데 계수조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금리인하에 따라 생겨난 국공채 이자비용 1조4천억원의 '여윳돈' 을 따내려는 정부부처.관련단체의 로비도 막판까지 치열했다.

예산안 심의과정의 최대 쟁점을 살펴본다.

이상렬.서승욱 기자

[제2건국운동 지원]

한나라당은 처음부터 제2건국운동 관련 예산 7백70억원을 전액 삭감하자고 집요하게 주장했다.

관련 예산은 제2건국위 자체 예산 20억원, 국민운동 지원 예산 1백50억원, 공공행정 서비스요원 채용비 6백억원. 제2건국운동이 신당 창당 용도로 전환될 수 있다는 의구심을 안고 있는 한나라당은 국민운동 지원금과 공공행정 서비스요원 채용 예산 7백50억원에 더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지방 곳곳에 선심 (善心) 성으로 나갈 수 있는 돈이라는 것이 이유다.

한나라당은 지방의회에서 제2건국운동 추진에 따른 조례 제정을 반대하라는 지침을 내려놓고 있는 상태. 여야는 이 문제를 뒤로 제켜놓고 다른 예산부터 따져들어갔다.

여야의 입장이 그만큼 완강했기 때문이다.

막판에 국민회의가 "그렇게 못미더우면 부대 (附帶) 의견을 명확히 달아 다른 용도로 일절 쓸 수 없도록 하면 될 것 아니냐" 며 정면승부를 걸었다.

그러자 한나라당은 제2건국위 자체 예산 20억원에 한해 인정해줄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예결위 관계자들은 "예산 용도를 명확히 밝혀 7백70억원이 모두 제2건국운동 관련 예산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하는 절충안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고 말했다.

[안기부 비밀예산]

예산 심의과정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은 줄기차게 안기부 예산을 물고늘어졌다.

특히 각 부처 예산에 끼어있는 예비비나 '203특수활동비' '204업무추진비' 로 감춰져 있는 비밀예산을 문제삼았다.

공식적인 예산 2천여억원 말고도 4천억원이 은밀하게 잡혀있다는 것이다.

계수조정 소위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논란은 여전했지만 한나라당의 공세가 공개회의 석상에서만큼 뜨겁지는 않았다.

한나라당은 "비밀예산 4천억원 중 절반 이상은 덜어내야 한다" 는 주장을 계속했다.

반면 국민회의.자민련은 "해당 상임위인 정보위에서 한푼도 손대지 않고 올라왔지 않느냐" 며 원안 통과 논리로 야당의 공세를 막아냈다.

회의가 거듭되면서 야당의 요구도 다소 수그러들었다.

한나라당 간사인 박종근 의원은 "얼마를 떼내라고 말하기 어렵지만 공공부문에서 1조5천억원의 군살을 줄이면 된다" 며 민감한 부문에 대해 다소 여유를 보였다.

그러나 제2건국운동 관련 예산 등 첨예한 쟁점에 시간이 소요되면서 안기부 예산은 핵심 의제에서 뒤로 밀려났다.

예상밖 상황전개가 안기부 예산의 순조로운 통과를 도운 셈이다.

[2조 공공근로사업]

여야는 예산심의 과정에서 한 목소리로 공공근로사업의 비효율성을 지적했다.

하지만 막상 계수조정 과정에선 입장이 갈렸다.

한나라당은 예산에 책정된 2조원 중 1조2천억원을 삭감해 3D업종이나 중소기업 지원으로 돌려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실업대책 효과가 크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넥타이를 맨 실업자들이 자가용을 몰고 와 수당을 타가는 경우

도 있다" 며 "한마디로 밑빠진 독에 물붓기" 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당도 한나라당의 취지에는 공감했다.

국민회의 간사인 조홍규 (趙洪奎) 의원은 개인 의견임을 전제, "야당이 좋은 계획만 가지고 오면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다" 며 양보 의사도 피력했다.

그러나 여당은 2백만명에 육박하는 실업자들을 위한 단기 대책으론 공공근로사업이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여당은 시간제약 때문에라도 다른 실업대책을 마련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한나라당 설득에 나섰다.

대신 6백억원 정도는 야당이 원하는 사업으로 돌릴 수 있다는 양보안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으론 "2000년 선거를 의식해 내년 말에 공공근로사업비를 집중적으로 풀어놓는 일은 없을 것" 이라며 야당의 걱정도 달랬다.

[교원퇴직금 재원]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국공채 이자비용 절감분 중 9천억원을 일찌감치 교원정년 단축에 따른 퇴직금으로 확보하려는 계획을 마련했다.

현재 65세인 교원정년을 2001년 60세로 단계적으로 줄이는데 따른 명예퇴직금 등의 재원조달이 시급했던 것. 그러나 교원정년 단축 반대를 당론으로 정해온 한나라당은 완강히 거부했다.

더구나 세금으로 퇴직금을 주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한나라당의 주장. 교육부와 예산청은 일단 지방교육재정 특별회계로 돈을 융자해달라는 제안을 했고, 한나라당은 2일 오전 "인구과밀지역에 학교 신축용도로는 9천억원을 배정해줄 수 있다" 고 나왔다.

그러나 교육부가 이렇게 융자받은 돈을 쓰는 용도가 꼭 한정된 것은 아니어서 교육부로선 일단 이 돈을 퇴직금으로 사용한다는 입장이다.

당장 내년에 교직을 떠나는 교사들에 대한 퇴직금 지급이 급하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은 퇴직금 재원을 확보한 셈이 됐고, 한나라당은 나름대로 명분을 살린 셈이 됐다.

[SOC 투자]

계수조정 소위는 사회간접자본 투자와 지역개발 등 건교위 증액 요구사안 검토를 맨 뒤로 돌려놓았다.

의원들 개인에겐 물론 정당 지도부에 온갖 민원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소위는 그러나 예산을 배정해도 부담이 크지 않은 소규모 지역개발 사업은 2일 오전 중 대부분 처리했다.

'누이좋고 매부좋은' 식으로 여야가 주거니 받거니 한 흔적도 역력했다.

우선 울산경찰청 신설 경비 (45억원) 를 반영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광역시에 걸맞은 경찰청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 강원대 의대 부속병원 의료기자재 확충비와 경북대.전남대.공주대 기숙사 신축비 65억원도 증액해야 한다는 데 의견이 모아진 상태. 부산 아시안게임 조직위 지원금 20억원과 99년 겨울아시안게임 (용평.춘천.강릉) 조직위 지원금 23억원도 새로 계상하기로 했다.

경주 고분군 매입.정비 경비 90억원도 긍정검토 대상에 들어갔다.

남해 송정관광지 개발 지원비 10억원이 국민회의쪽 요구로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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