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이거스 도박도시서 가족휴양지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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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시의 남북을 관통하는 가장 큰 길 라스베이거스 불리바드 3650번지 벨라지오호텔. 방문객이 입구에 들어서면 8에이커나 되는 널찍한 호수에 우선 놀라게 된다.

호수를 끼고 호텔 로비로 들어서면 이번엔 한아름의 꽃으로 수놓인 넓고 화려한 꽃밭에 또 다시 놀란다.

지난달 문을 연 이 호텔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호텔. 총 투자비 18억달러. 객실 3천개에 임직원만 8천6백명에 이른다.

하지만 카지노는 화려하지 않다.

다른 호텔과 다를 바 없거나 오히려 좁다는 느낌. 컴퓨터.정보통신 전시회인 98컴덱스 참가차 이곳을 찾은 40대 레오 부다는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 밤새 슬롯머신이 돌아가고 블랙잭이 펼쳐졌던 이전 모습과 달리 푸근하고 평온한 휴양지에 온 느낌" 이라고 말했다.

호텔측은 "카지노를 찾는 고객보다 휴식을 즐기려는 가족단위 관광객들을 더 많이 유치하는 게 우리의 목표" 라고 밝혔다.

카지노의 대명사, 세계 최대 도박도시 라스베이거스가 한창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꺼지지 않는 카지노 네온사인의 영화 (榮華) 를 자랑했던 이 도시가 도박 위주의 산업에서 벗어나 관광과 각종 오락을 포함한 다양한 레저산업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97년 한햇동안 이곳을 찾은 관광객은 3백46만여명. 풀고 간 돈은 총 2백49억5천만달러. 가위 세계 최대의 도박도시라는 이름에 걸맞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영광이 앞으로도 계속될지 의문이라는 점이다.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의 연구분석가 케빈 배거는 "10년전까지만 해도 라스베이거스는 도박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

하지만 이 독점이 깨지고 있다.

때문에 라스베이거스가 휴양객을 위한 새로운 개념의 관광레저타운으로 변신하는 것은 필연적" 이라고 지적했다.

독점이 깨져가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내 도박을 허용하는 지역이 늘어간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에서 카지노도박이 허용되는 주 (州) 는 뉴저지.일리노이.사우스다코타 등 10개주로 늘어났으며 지난 11월초에는 캘리포니아주 인디언 보호구역내에도 카지노도박이 허용됐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앞으로 2년 안에 전체 미국인의 90% 이상이 카지노 인근 2백마일내에 살게 된다는 얘기다.

요컨대 '도박 = 라스베이거스' 라는 등식이 깨지게 되는 셈이다.

라스베이거스 쇠락의 기미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라스베이거스 전체 방문객수는 96년 (2천9백64만명)에 비해 조금 늘어난 3천46만명. 그러나 호텔 객실점유율은 93년 이래 최저치로 떨어졌다.

93년 이후 92~93%대를 유지했으나 지난해는 90.3%로 추락했다.

평균 체류일도 3.7일에서 3.5일로 줄었다.

대형호텔들도 라스베이거스의 변신을 부추기고 있다.

도박에 대한 독점권이 사라질 조짐을 미리 알고 재빠르게 호텔 신축을 통해 관광지역 개발 붐을 일으킨다는 얘기다.

벨라지오호텔 건너편에는 힐튼그룹이 7억6천만달러를 들여 짓는 '파리호텔' 공사가 한창이다.

북쪽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14억5천만달러가 들어가는 베니시언호텔 공사가 진행 중이고, 남쪽으로는 9억5천만달러짜리 맨덜레이 배이 호텔의 마감공사가 한창이다.

라스베이거스 관광청에 따르면 2000년까지 신축되거나 증축될 호텔수는 25개. 이에 따라 올해 10만9천개이던 객실수가 2000년에는 12만8천개로 껑충뛰면서 '노는 방' 이 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들 빈 방을 대규모 테마파크나 각종 오락시설에 이끌린 가족관광객들로 채우겠다는 게 대형호텔 업자들의 계산이다.

지난해 개장한 뉴욕호텔에는 시속 80㎞ 이상으로 달리는 고속 청룡열차가 있고, 트레저 아일랜드 호텔에서는 매일 두차례씩 영국군함 브리태니아호와 해적선 히스파니올라호의 해적선 쇼가 펼쳐진다.

주당국과 관광청 차원의 변신노력도 활발하다.

네바다주는 로스앤젤레스의 디즈니랜드.유니버설 스튜디오와 라스베이거스 인근의 그랜드캐니언.매뉴먼트 밸리 등 관광지를 연결하는 패키지 관광상품을 개발할 계획. 특히 이를 위한 홍보예산으로 다른 주의 평균보다 10배나 많은 연간 2천7백만달러를 책정했다.

라스베이거스 매커랜공항에 비치된 홍보책자에는 눈에 띄는 제목이 있다.

'화려한 네온을 넘어 (Beyond the Neon)' .이 작은 책자에서 잔 레버티 존스 시장은 이렇게 환영인사를 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의 다양한 관광시설은 여러분들을 편안하고 즐겁게 해드릴 겁니다. "

라스베이거스 =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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