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엔 거북스럽지만 팔자니 이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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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호 26면

증시의 영원한 테마 중 하나가 ‘실적’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2분기 국내 기업들이 예상 밖의 실적을 내놓으면서 주가가 올랐다. 코스피 지수는 1600선을 바라보고 있다. 관건은 수급이 얼마나 따라줄 것이냐다. 수급은 증시를 움직이는 또 다른 축이다.

고란과 도란도란

먼저 외국인은 당분간 ‘사자’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올 들어 20조원 넘게 주식을 사들였다. 최근까지 23거래일 동안 단 하루를 빼고 순매수했다. 외국계 증권사들도 긍정적 보고서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물론 원화 강세로 매수세가 이어질지 의문이라는 신중론도 있다. 그러나 KB투자증권에 따르면 모건스탠리(MSCI) 한국지수의 12개월 예상 주당순이익비율(PER)은 선진시장과 신흥시장 대비 여전히 각각 14%, 21% 저평가돼 있다. 게다가 외국인 매수세의 중심은 미국계 중장기 펀드라는 것이 금융감독원의 분석이다. 갑자기 ‘팔자’에 나서 시장의 흐름을 바꿀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다음은 펀드다. 최근 주식형 펀드에서 2조원 가까운 돈이 빠져나갔다. 원금을 회복한 ‘초보’ 투자자들의 환매가 이어지고 있다. 2006년 이후 1600~1700선에서 자금이 집중 유입된 점을 감안하면 대량 환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환매 자금을 돌려주기 위해선 보유 주식을 팔아야 한다. 펀드가 매물을 쏟아내면 지수 하락을 부추길 수 있다. 그러나 1년짜리 정기예금 금리가 5%에도 못 미친다. 환매 자금이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오히려 지수가 1600선을 돌파하면 투자 심리가 안정되면서 환매가 진정되고 펀드로 돈이 들어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리고 연기금이다. 지난해 가을, 폭락한 시장을 떠받친 세력이다. 올 들어서는 차익 실현을 위해 5조6000억원어치를 팔았다. 그러나 하반기에도 계속 물량을 팔아치울 가능성은 작다. 국민연금의 주식 편입 비중은 지난달 말 현재 13% 수준이다. 하반기 목표인 15%에 못 미친다. 더 사지 않는다 해도 더 이상 ‘팔자’로 증시 발목을 잡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은 주가연계증권(ELS)이다. ELS는 운용 과정에서 주식을 사고판다. 구조상 주가가 오르면 주식을 사서, 주가가 내리면 주식을 팔아서 위험을 줄인다. 2008년 이후 올 상반기까지 발행된 ELS만 24조원이 넘는다. 지난해 주가가 떨어질 때는 ELS가 매도 물량을 내놔 주가를 끌어내렸다. 반대로 올해는 주가가 오르면서 ELS가 ‘사자’로 돌아서 주가를 밀어 올리고 있다. 증시가 상승 흐름을 이어가는 지금, ELS 매수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제대로 된 조정 없이 연초 이후 시장이 60% 오른 것은 부담이다. 새로 주식을 사기는 망설여진다. 그러나 수급 여건은 괜찮다. 주식을 팔기엔 조금 이르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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