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경제한파속 쫓기는 난민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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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경제난의 불똥이 안그래도 비참한 생활을 영위하는 난민들에게 튀고 있다.

실업률이 급등하는 등 각국 사정이 어려워지자 평소 난민유입에 관대하던 국가들까지 이들을 내쫓고 있기 때문이다.

11.8%의 실업률에 허덕이는 프랑스 정부는 24일 난민을 포함한 불법 이민자 6만명을 추방하겠다고 발표했다.

난민에 호의적이던 스위스는 수용시설 부족 등을 호소하며 인접국들에 난민보호 동참을 요구하고 나섰다.

설상가상으로 유럽연합 (EU) 은 난민들의 유럽정착을 금지하는 법안도 추진 중이다.

갈 곳 없어진 난민들은 보트피플이 돼 바다에 빠져 죽거나 방사능 오염지역 등 사지 (死地) 로 내몰리고 있다.

다수가 국경지역.바다에서 대책없이 떠돌고 있어 올겨울에 대량동사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코소보 산악지대에 몰려 있는 20여만명의 코소보 난민들은 얼어죽을 위험이 가장 크다.

유엔난민구제고등판무관실 (UNHCR) 은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난민수를 약2천2백만명으로 추정했다.

◇유럽 = 이탈리아 남부 산포카의 난민수용소에는 22개국의 난민들이 수용돼 있다.

지난해부터 쿠르드족들이 화물선이나 고무보트를 타고 대거 이동해 왔으나 최근에는 코소보 난민이 급증했다.

현재 쿠르드족 난민은 1백만명, 코소보 난민은 27만명으로 추정되는데 대부분 유럽 각국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

코소보 난민들은 보통 마피아조직에 운임을 지불하고 엔진이 달린 고무보트를 이용해 탈출하는데 도중에 추적선의 총격을 받아 부상한 난민도 상당수다.

돈.귀중품을 악질 선원들에게 빼앗기는 경우도 다반사이고 일부 어린이들은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해안에 버려지기도 한다.

잔혹한 선주들이 경비정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소리내 우는 유아들을 바다에 내던지는 경우도 많다.

◇옛 소련 = 몰도바.타지키스탄의 내전, 체첸 전쟁 등 옛 소련 붕괴 후 지역분쟁으로 독립국가연합 (CIS) 역내에서 약 3백6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러시아 경제위기에 따라 이들의 생활은 더욱 비참해졌다.

일부 난민들은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당시 방사능에 오염된 '죽음의 땅' 으로까지 옮겨가고 있다.

체르노빌 원전에서 북서쪽으로 30㎞ 떨어진 베르보비치 (벨로루시 역내) 는 원전사고 후 약 3분의1의 주민이 떠나갔으나 95년부터 내전의 포화를 피해 타지키스탄의 난민들이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

이들은 "전화 (戰火) 의 공포에 비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의 공포 (방사능) 는 아무것도 아니다" 고 말한다.

◇동남아 = 태국 국경지역의 난민수용소에는 지난 9월 현재 약11만명의 미얀마 난민과 3만7천명의 캄보디아 난민이 살고 있다.

난민에 관대하던 태국당국은 최근 경제위기가 닥치자 외국인 불법노동자와 함께 난민들까지 속속 추방하고 있다.

캄보디아 난민은 지난해 7월 쿠데타로 인한 정국혼란으로 발생했으며 미얀마 난민은 군사정권과 지방의 소수 반란군간 충돌 및 약탈을 피해 태국으로 피난했다.

런던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인권감시단' 은 미얀마 군사정권이 국민들에게 강제노동.집단이주를 강요하는 것도 난민발생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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