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미당·황순원문학상 최종 후보작 지상중계 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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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틈새, 그 공간이 빚는 격렬함
시 - 김행숙 ‘따뜻한 마음’ 외 19편

흔히 마음은 문이 단단히 달린 집인양 표현된다. 그러나 김행숙(39·사진) 시인이 그리는 ‘마음’은 무정형의 것이다. 얼어붙었을 때 오히려 고정되고, 녹아내리면서 어디론가 달아나버리는, 그런 것이다. 그런 마음의 형상이란 타인과의 관계, 만남에서 빚어진다. 그래서 시인은 ‘너’를 이야기한다.

“‘너’가 매우 가까운 존재로 느껴져요. 너와의 관계로 인해 내 형상이 유지되고 반응하고 느끼는, 그런 존재.”

흔히 ‘너’란 부재하는, 먼, 닿을 수 없는 존재로 그려진다. 남들이 너와 나의 거리를 말하는 동안 시인은 아주 가까운, 그러나 하나가 되지 못하면서 빚어내는 ‘틈’을 이야기한다.

“나와 다른 존재와의 사이, 그 틈은 아주 좁으면서도 감각·사유의 운동이 일어나는 격렬한 공간이지요. 너와 내가 엉켜있는 공간이기도 하고요.”

컴컴한 마룻바닥에서 “은빛 칼처럼 빛이 쑥 올라오는 틈새”(‘어두운 부분’)나, 환한 빛 속에서 포옹한 두 사람의 접촉면이 만들어내는 어둠처럼.

이광호 예심위원은 “따뜻한 마음이라는 감정 혹은 정서는 관념에 속하지만, 시인은 그것을 어떤 순간의 반짝이는 이미지를 빌려 육체가 감각할 수 있는 새로운 정서로 재탄생시킨다”고 평했다. 이경희 기자

◆김행숙=1970년 서울출생. 1999년 ‘현대문학’ 등단. 강남대 국문과 교수. 시집 『사춘기』『이별의 능력』.


어른 되는 건, 내 안의 뭔가를 죽여가는 것
소설 - 김애란 ‘너의 여름은 어떠니’

짝사랑했던 대학 선배로부터 2년 만에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콩닥콩닥 가슴이 뛴다. 그러나 나가지 않으려 마음먹는다. 가장 말랐을 때와 비교하자면 15㎏쯤 더 나가는 뚱뚱한 모습, 평일에 할 일 없이 뒹굴거리는 낙오자의 안색을 보여주기 싫어서다. “광합성을 하는 사람에게는 광합성의 빛이, 전자파를 먹고 사는 사람에게는 전자파의 낯빛이 얼굴에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이날은 초등학교 친구의 장례식이 있었다. 그러나 “도와달라”는 말 한마디에 흔들린다. 방송국 AD로 일하던 선배는 펑크 낸 출연자를 대신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나’는 조문 복장을 하고 방송국으로 향한다.

원숙한 세계를 그려낸다는 평을 받던 김애란(29·사진)은 ‘너의 여름은 어떠니’(‘문학동네’ 2009년 여름호)에서 제 나이를 찾은 듯했다.

“연애 이야기는 늘 간질간질하게 쓰고 싶었어요. 이번엔 연애를 장치로 사용했을 뿐이지만, 누군가를 순수하게 좋아했던 시절을 만들고 싶었죠.”

‘나’를 기다리는 건 한 치수 작은 레슬링복을 입고 미모의 푸드파이터와 먹기 대결을 벌이는 것. 선배는 타이르며 격려한다. “미영아, 그냥 평소 너 먹는 대로만 해. 긴장하지 말고. 알았지?”

독자로선 웃음이 나지만 당하는 입장이라면 눈물 날 일이다. 희비가 갈리는 지점을 예리하게 포착해 능청스럽게 써내는 작가의 재주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주인공에게 상복을 입힌 채 하루를 돌아다니게 하고 싶었어요. 관계에선 의도하지 않아도 상처를 주고받는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 애도의 순간이 되도록. 성인이 된다는 건 조금씩 자기 안의 무언가를 죽여가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김미현 예심위원은 “상처의 먹이사슬을 ‘현대판 판소리체’처럼 써낸다. ‘포스트 은희경’ 같으면서도 ‘김애란류’를 설정하는 개성도 있다”고 평했다.

이경희 기자

◆김애란=1980년 인천출생. 2002년 대산대학문학상으로 등단.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수상. 단편집 『달려라 아비』『침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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