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걸 교수의 공공디자인 클리닉 <6> 지하철 승강장, 줄이고 모으고 비우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우리나라에서는 서울시, 5개 광역시, 수도권 광역노선상의 5개 도시 등 11개 도시의 시민이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그중 서울지하철은 연간 수송량에서 세계 3위입니다. 지하철은 이처럼 보편적인 교통수단이 되었지만, 승강장은 천편일률적인 디자인, 노출되어 있는 각종 설비들, 과다한 광고물로 여전히 쾌적하지 않은 공간입니다.

서울지하철 2, 4, 5호선이 교차하는 동대문운동장역은 환승하는 승객과 인근 쇼핑타운 이용객들로 늘 붐비는 데다, 양 방향의 선로가 중앙의 승강장을 공유하는 구조로 돼 있어 더욱 복잡합니다. 게다가 수많은 상업광고물로 인해 노선 및 출구 안내 사인이 보이지 않아 방향을 잃어버리기 일쑤입니다. <사진 a>

디자이너 최성호는 불필요한 정보를 제거하고, 각종 시설과 장비를 통합함으로써 깨끗하고 안전하며 잘 읽히는 승강장을 설계했습니다. 승강장의 질서와 안전을 위해 소화전, 소화기, 비상전화, 손전등, 방독면 등의 방재시설과 안전장비를 하나로 모아 가장 눈에 잘 띄는 위치에 둡니다. 비상전화는 인체치수를 고려하고, 방재 시설함은 적정 높이로 하여 시각적 차폐를 최소화하였습니다. <그림 b>

천장은 위로 올리고 측면에 안내사인을 적용하니 출퇴근 시간 인파 속에서도 눈높이 위에서 시각정보가 쉽게 들어옵니다.

천장 중앙의 둥근 갓 속에 냉난방, 환기, 조명 등의 설비를 모아 공간을 단순화합니다. 연립한 기둥을 뒤덮은 광고물을 걷어내고 광고는 스크린 도어에 제한적으로 허용합니다.

특히 인근의 흥인지문과 동대문 지역의 패션 상권을 의식해, 전통안료인 석간주(石間<7843>)를 연상시키는 붉은색과 빛이 어우러진 감성적 공간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지하철 승강장은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적지 않은 시간을 체류하는 곳입니다. 시민들이 지하의 밀폐된 공간으로 내려왔다는 사실을 잊을 만큼 밝고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고, 지역 고유의 이미지를 지닌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정보량은 줄이고, 시설과 설비는 모으고, 공간은 비워나가야 합니다.

권영걸 서울대 교수·한국공공디자인학회 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