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한자 사용 전면폐지한 북한…“통일 위해 절실” 한문 학습은 강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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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북한 김일성종합대의 ‘력사학부’엔 6개 학과가 있다. 이 중 ▶김일성동지혁명력사학과 ▶김정일동지혁명력사학과 ▶당정책사학과 등 당과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역사’를 전담하는 학과가 절반이다. 철학부는 ▶김일성주의로작과 ▶주체사상학과 ▶철학과의 3개 학과다. 전통 인문학 중 역사·철학의 대부분이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혁명사로 이뤄진 것이다. 더구나 북한에선 ‘인문학’이란 분야 자체가 없다. 사회과학·자연과학의 이분 체계다. 문학·철학도 ‘사회과학’의 영역에 편제된다. 북한에서 사회과학은 ‘사회주의 실현의 학문’으로서 자리매김되기 때문이다.

동국대 북한학연구소가 북한 학문세계의 실상과 변모상을 보여주는 책 『북한의 학문세계』(선인)를 최근 펴냈다. 지난 60여 년 간 발표된 북한의 학술 잡지와 논문을 최대한 수집해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각 학문 영역별 특징을 개괄한 책이다. 연구소의 강성윤 소장은 “북한학은 그간 정치 노선이나 사회 실상의 파악에만 치우쳤다”며 “북한 학문세계의 실상을 보여주는 첫 시도”라고 책 발간의 의의를 설명했다. 연구소는 지난 2년 여 일본·중국·러시아 등을 통해 관련 자료를 수집해 왔다. 하지만 북한을 직접 통하지 않는 한 자료의 체계적 수집은 불가능했다. 특히 1940~50년대 북한 학문의 초창기 모습을 알 수 있는 자료의 입수는 쉽지 않았다고 한다. 이 시기 학술 성과의 일부는 1960년대 후반 이후 주체사상의 강화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폐기됐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북한 당국은 1968년에 모든 학술지를 일시 정간한 바 있다. 특히 역사학계에선 이 시기가 기존 연구가 주체사상으로 재편되는 학문적 격변기였다. 주체철학의 개입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분야가 ‘논리학’이란 점도 흥미롭다. 북한이 IT산업을 강조함에 따라 ▶기호 논리학 ▶인공 지능 ▶전산 언어학 등이 부각됐다. 이에 따라 2000년 이후 이 분야의 논리학 연구 성과가 급증했다. 주체사상과 무관하다는 의미에서의 ‘순수’ 논리학이 최근 북한에서 각광 받는 셈이다.

1949년 이후 한자 사용을 전면 폐지한 북한에서 56년 김일성종합대에 한문학과가 생기며 한자교육이 강화된 배경도 흥미롭다. 당시 공산권에서 독자노선을 걷게 된 북한은 ‘민족문화’에 대한 발굴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한문 중학교(1)』(2002) 교과서 머릿말엔 “우리 말을 옳게 다듬어 쓰고자 하여도 한문을 알아야 합니다. 한문공부를 잘하는 것은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을 위하여서도 절실히 필요합니다”고 돼 있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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