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환자들의 큰누이…청백봉사 대상 양해숙 간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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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기침이 심하면 각혈하기 쉬워요. 꼭 이불을 덮고 주무세요. " 제22회 청백봉사상 대상 수상자인 서울 시립서대문병원 간호사 양해숙 (梁海淑.43.지방간호주사보) 씨는 폐결핵 환자들로부터 '큰누이' 로 불린다.

가족들도 외면하는 중증 폐결핵 환자들을 친형제.친부모처럼 대해준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간호고교를 졸업한 뒤 79년 지방간호직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 서울시내 일선 보건소에서 근무하던 梁씨가 시립서대문병원에서 결핵환자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82년. 무연고 행려병자.노숙자 등 결핵 중증환자들을 전문으로 치료하는 이 병원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숱하게 많았다.

"부모를 입원시키고 한번도 찾아오지 않는 자식들, 죽기 전에 고향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며 엉엉 우는 시한부 환자…. " 梁씨는 목이 멨다. 2년 가까이 환자를 돌보다 자녀를 출산하느라 어쩔 수 없이 보건소로 자리를 옮겼던 그녀는 그후 의지할 사람 하나 없어 삶을 포기하는 결핵환자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그래서 96년 동료 간호사들도 꺼려하는 시립병원 근무를 자원했다.

그녀는 우선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제3종 법정전염병인 폐결핵은 환자의 기침으로도 감염될 수 있어 수시로 각혈하는 2백70여명의 환자들 곁에서 일일이 피를 받아내고 손발을 닦아주려면 위험을 무릅쓰는 희생정신이 몸에 배어야 하기 때문. 이때 펼친 것이 '환자 = 가족' 이란 환자사랑 운동. 60여명의 간호사중 앞장서 환자를 친혈육처럼 대하며 딸.어머니.친구가 돼 각혈을 모두 받아냈다.

환자 金모 (34) 씨는 "스스럼없이 피를 받아내고 등을 토닥거려 주기 때문에 병이 빨리 낫는 기분이 든다" 며 고마워했다.

'큰누이' 는 밤중에 실려온 무연고 환자가 사망하면 직접 염까지 한다.

지금까지 49명이 그녀의 손을 거쳐 장례를 치렀다.

오갈 곳 없는 불쌍한 뇌성마비 장애 고아를 돌보는 일도 그녀의 몫. 94년부터 장애아들을 위해 보람있는 일을 해보자는 뜻에서 쉬는 날에는 강동구상일동 고덕 주몽재활원으로 달려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엄마가 됐다.

청백봉사상 수상 상금 1백만원도 이 아이들을 위해 사용할 예정. 하루 3교대인 직업 특성상 아내.엄마.간호사로 1인3역을 하는 그녀에겐 집안일을 돌봐주는 시어머니 (68) 와 구김살없이 자라는 딸 (중3).아들 (초등4) 이 큰 힘이 된다.

최근 남편이 사업에 실패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녀의 성격이 워낙 밝아 가정에선 항상 웃음꽃이 피어난다.

양영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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