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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APEC 정상회의에 바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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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APEC) 정상회의가 17, 18일 말레이시아의 콸라룸푸르에서 열린다.

아시아 국가들의 상당수가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번 회의가 갖는 의미와 중요성은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다.

최대의 과제는 당면한 통화.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이 지역 국가들의 성장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얼마나 내용있는 성과를 거두느냐에 따라 APEC의 존재의의가 시험을 받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APEC은 '열린 지역주의' 를 표방하며 89년에 창설된 지역협력체다.

무역.투자 자유화와 경제.기술협력촉진 등에 주력해 왔고 각료회의도 통상장관 위주로 운영돼 왔다.

따라서 금융위기의 인식과 대처방안은 APEC으로서는 다소 생소한 분야다.

작년 밴쿠버회의에서 아시아 금융위기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공동대응방안을 모색한다는 수준의 합의에 그쳤을 뿐 구체적인 대응책에 관해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아시아 금융위기는 러시아와 중남미 등으로 확산되면서 세계적 불황으로 이어지고 있고 이 지역 국가들의 극심한 침체는 보호주의에로의 후퇴를 촉진하는 위험한 상황이다.

올해부터 러시아.페루.베트남의 가입으로 회원국은 21개국으로 늘어났다.

APEC이 느슨한 협의체가 아닌 실질적 협력체라면 이번에 위기탈출의 지침이나 해법 등 뭔가 구체적인 것을 내놓아야 한다.

이번 회의를 앞두고 일본은 3백억달러를 지원키로 한 '신 미야자와 구상' 을 발표했고, 세계은행도 아시아금융시스템 개혁을 위해 전향적인 협조를 다짐했다.

미국 국제경제연구소 (IIE) 의 프레드 버그스텐 소장은 APEC의 모든 회원국들이 재정과 금융부문에서 동시에 확대정책을 쓰는 '회복프로그램' 을 각국 정상들에게 이미 제의했다.

이라크사태 때문에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참석은 못하지만 아시아 국가들의 은행 및 기업채무의 상환재조정과 일부 탕감에 관한 모종의 제안도 미국이 준비중이다.

정상회의에 앞선 각료회의에서 임산물 및 수산물의 무역자유화를 놓고 회원국들간에 줄다리기가 거듭되고 있고, 마하티르 총리의 인권탄압을 둘러싸고 일부 정상들간의 접촉회피 등 굳어진 회담분위기가 걱정도 된다.

그러나 이 모두를 접어두고 아시아금융위기 해소에 전적으로 매달려야 한다.

국제금융감독체제 개선, 조기경보제 도입, 헤지펀드 규제 등에 관한 막연한 '말잔치' 를 넘어 투명성과 정보공개 및 규제에 관한 기준 등 구체적 내용과 실천의지를 담아야 한다.

민간부채 재조정과 탕감 등 '숨통을 터주는' 방안도 적극 강구돼야 한다.

APEC이 아시아금융위기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그 결과에 따라 APEC의 효용과 앞날이 좌우된다는 점을 각국 정상들은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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