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고금리 회사채'에 속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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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A그룹 재무팀은 얼마전 경영진으로부터 "고금리로 발행된 회사채를 수거해 보라" 는 지시를 받은 후 비상체제다.

급한대로 개인.기관투자자 몇군데를 알아봤지만 내놓겠다는 곳은 '예상대로' 하나도 없었다.

재무담당자 金모씨는 "올초만 해도 '3월 대란설' '6월 대란설' 등으로 상황이 급했기 때문에 높은 이자를 주고라도 자금을 조달했으나 이제는 금리 부담이 너무 커 곤혹스럽다" 면서 "갖가지 대응방안을 마련중이지만 현실적으로 뾰족한 방법이 없다" 고 울상을 지었다.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 직후 대거 발행한 회사채 (3년만기)가 이제는 '이자 까먹는' 골칫덩어리로 변해 대기업들이 애를 태우고 있다.

현대.삼성.LG.대우.SK를 중심으로 한 대기업들은 지난해 12월 외환위기 발생 이후 경쟁적으로 자금 확보에 나서 종전보다 최고 10배 이상의 회사채를 높은 금리로 발행했다.

이중 일부를 외국 빚 갚는데 사용하긴 했지만 상당 부분은 '만일의 사태' 에 대비해 비축해 뒀는데, 금리가 안정세로 돌아서면서 이자 수입은 뚝 떨어진 반면 전에 발행한 회사채에 대해서는 계속 높은 이자가 나가는 바람에 손실이 엄청나게 발생한 것. 증권거래소에 따르면 5대그룹의 97년 12월 한달간 회사채 발행규모는 6조9천2백억원으로 전달 (1조9천5백억원) 보다 3.5배나 늘었다.

수익률이 높았던 지난해 12월부터 올 3월까지 4개월간의 발행량만 무려 15조4천8백억원어치에 달했다.

A그룹의 경우 유통수익률이 평균 24.3%에 달했던 지난해 12월의 회사채 발행물량이 전달보다 무려 10배나 많은 2조3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그후 수익률이 계속 낮아져 지금은 절반도 안되는 10% 이하에 머무르는 바람에 이 업체는 지금까지만 1천억원대에 이르는 '역 (逆) 마진' 을 보게 된 것. 앞으로도 이런 현상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이에 대해 서울대 송병락 (宋丙洛) 교수는 "기업들이 금융위기에 따른 상황 대처가 서투르다 보니 이런 상황이 빚어졌다" 면서 "이는 기업 재무구조를 다시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고 지적했다.

김시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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