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삐삐 휴대폰…마땅히 쓸곳없는 애물단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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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근 국내에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휴대폰.삐삐.시티폰 등 중고 정보통신단말기 수가 2천만대를 넘어서고 있어 재활용 문제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정보통신부가 최근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현재 사용하지 않는 삐삐 대수가 무려 1천9백만대, 휴대폰은 4백여만대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비스 중단 위기에 몰린 시티폰 중고품도 60만대를 넘어섰다.

특히 휴대폰의 경우 새로운 모델이 계속 등장할 예정이어서 중고품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중고 단말기가 내년에는 3천만대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 실태와 문제점 = 국내 휴대폰 가입자는 1천2백만명. 업체들은 국내에서 이제까지 판매된 휴대폰을 모두 감안하면 적어도 4백만대가 중고품으로 전락했다고 분석한다.

중고품이 늘어난 가장 큰 이유는 디지털 휴대폰이 등장하면서부터. 한때 SK텔레콤의 아날로그방식 가입자가 2백20만명을 넘어섰는데 지금은 80만명만 남았다.

여기에서만 1백40만대의 아날로그 휴대폰이 중고품으로 전락한 것. 개인휴대통신 (PCS) 의 등장도 이같은 추세를 부채질한 것으로 보인다.

삐삐의 경우 10만원짜리가 1만원 이하로 떨어지고 중.고등 학생이 새로운 모델을 선호, 수시로 교체해 중고 단말기 수가 급증하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중고단말기가 늘어나도 이를 재활용하는 방안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 우선 중고 단말기의 회수실적이 신통치 않다. 국내 휴대폰 회수율은 13.5%로 선진국 (25%)에 비해 낮은 편이다.

일부에서는 중고 휴대폰을 외국에 수출하려는 움직임도 있지만 아날로그방식 제품은 아직 해외시장이 있지만 디지털방식은 국내 표준인 부호분할다중접속 (CDMA) 방식을 채택한 국가가 적어 실적이 전무하다.

휴대폰의 각종 핵심부품을 재활용하자는 주장이 있지만 부품을 떼어내는 비용이 더 들어 실효성이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환경전문가들은 버려진 휴대폰의 배터리가 심각한 공해를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구형 휴대폰용 배터리 재질로 쓰인 니켈카드뮴은 특별한 관리가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환경 유해물질이다.

◇ 대책 = 정보통신부는 최근 관련업체와 회의를 갖고 중고단말기 활용을 위한 긴급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휴대폰 업체가 분실 고객에게 무상으로 빌려주는 방안 등을 생각하고 있다.

휴대폰을 잃어버릴 경우 새로 구입해야 하는데 이때 서비스 업체들이 분실 고객에게 무상 대여하자는 것이다. 신세기통신은 이미 분실고객을 위한 중고 휴대폰 무료대여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기존 가입자가 신형으로 제품을 바꾸면 구형제품을 받아뒀다가 휴대폰을 분실한 고객에게 빌려준다.

신세기통신 측은 "이를 통해 통화수입도 올리고 해당 고객은 별도의 휴대폰 구입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이동전화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고 밝혔다.

이밖에 일시 방한한 외국인이나 임대제도 등을 통해 중고품을 활용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해외수출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 SK텔레콤 등 국내 휴대폰업체들은 이제까지 23만대의 휴대폰을 미국 등에 수출한 실적이 있다. 삐삐의 경우 중국에 5만대를 수출했다.

◇ 해외 사례 = 미국의 휴대폰업체 벨애틀랜틱 모빌사는 기존의 아날로그 가입자가 보상판매 제도를 통해 회사에게 판 구형 휴대폰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구형 제품에서 다이얼 기능을 제외해 비상번호 '911' 만 누를 수 있도록 수리해 월사용료 3달러 정도로 신체 장애자나 노인들에게 쓰도록 하고 있는 것.

이밖에 디지털방식의 경우 길을 잃기 쉬운 치매노인을 위해 휴대폰에 위치확인기능만 집어넣어 벨트에 매달아 둠으로써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환경보호를 위한 배터리 재활용 움직임도 활발하다. 미국의 일부 주 정부는 휴대폰업체가 배터리를 의무적으로 수거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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