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격'사건 입연 북한 입다문 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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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북한 대남선전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祖平統)가 한국 정치권의 뜨거운 논란거리인 '대선기간중 총격요청 의혹사건' 에 관해 27일 언급한 내용은 우리를 경악하게 한다.

조평통은 이날 "우리가 입을 열면 여 (與) 든 야 (野) 든 다 함정에 빠지고 말 것" 이라고 자신만만해 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한국을 요리할 수 있다는 식이다.

더 놀라운 대목은 당사자라 할 여야 모두가 이에 침묵한다는 사실이다.

여야는 28일 총격요청 의혹을 둘러싸고 정치 공방을 계속하면서도 북한의 언급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자칫 먼저 반응을 보였다가는 '구설수' 에 오르기 때문인지, 북한의 심기를 거스를까 해서인지 아무튼 이상한 모습이다.

북한의 이날 입장 표명은 '북풍공작' 이 실재했음을 사실상 인정하면서 우리 정치권을 협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 눈길을 끄는 부분은 북한이 "정쟁 (政爭)에 환장이 돼 북 (北) 을 걸고 그 무슨 판문점 사건이라는 것을 가지고 서로 물고 뜯고 있다" 며 온갖 험한 말로 여야 모두를 겨냥하면서도 한나라당에 특히 화살을 겨누고 있는 점이다.

북한은 한나라당이 금강산관광 사업에 반대하고 있다며 "우리가 입을 열면 이회창 (李會昌) 을 비롯한 한나라당 패거리들이 덕볼 게 없다" 며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이 점을 주목한다.

자신들이 확보한 정보를 이용, 대북지원이나 금강산사업에 대해 중단이나 신중론을 제기해온 야당을 압박하겠다는 자세는 범상치 않다는 것. 정부 관계당국은 북풍에 대한 북한의 시각과 태도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분석에 골몰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무분별한 북풍논란으로 인해 북한이 우리 정치권에 대해 ' 협박성 발언' 까지 할 수 있게 된 저간의 상황에 대한 자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북한의 반응을 정치권이 제각기 견강부회 (牽强附會) 식으로 해석, 혼란이 더해진다면 북한의 대남전략에 완전히 말려드는 꼴이 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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