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화지도]4.연극·뮤지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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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17세기 등장한 가부키는 요즘도 매일 두 차례씩 막이 오르며 긴자 가부키좌의 2천여석을 꽉꽉 메우고 있는 살아있는 장르다.

출연진이 모두 여성이고 통속적인 줄거리에 노래와 춤이 곁들여지는 점에서 우리 여성국극과 비교되는 다카라즈카의 인기는 뮤지컬을 능가하는 수준. 우리에게는 일제치하를 떠올리게하는 복고적 장르 신파극도 중장년 고정관객들이 객석을 메운다.

1천5백석 이상의 대극장이 주무대인 이들 대형 공연만 활발한 것은 아니다.

도쿄 (東京) 시내에서 공연되는 소극장 연극도 하루 평균 1백50여편 이상.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노래와 춤이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재기발랄한 공연에서 전위적 실험극까지 소극장 연극의 다양한 흐름을 한마디로 요약하기 힘들 정도.

이처럼 다양한 장르들이 저마다 대중적 인기를 누리면서 공존하는 것은 대중성과 예술성을 대립시키는 경향이 강한 우리네 대학로와 다른 점이다.

덕분에 일본 연극이 아우르는 관객은 20대 젊은이에서 40, 50대 중장년까지 다양한 것이 특징. 지난 94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를 내한공연, 국내에도 이름이 알려진 극단 시키 (四季) 는 일본 상업뮤지컬을 대표하는 독보적인 극단. 53년에 창단된 이 극단의 작년 매출액은 약 1백70억엔. 7백여명의 극단식구 중 배우가 4백50여명. 7개의 전용극장을 포함, 작년 한 해 일본전역에서 2천1백여회의 공연을 했다.

조명이나 음향 등 일본의 무대기술은 세계적인 수준. 시키 같은 초대형 극단은 내부에 무대공학연구소가 따로 있을 정도. 가부키 같은 고전극 역시 80년대에 이미 미국의 무대비행기술을 도입, 곡예를 방불케하는 스펙타클한 무대효과의 '수퍼 가부키' 를 선보여 고령화하는 관객의 폭을 넓힌 바 있다.

다카라즈카도 의상과 무대의 화려함이 라스베가스쇼를 연상시키는 수준. 그러나 '카르멘' '베르사이유의 장미' 등 다카라즈카의 인기 레퍼토리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다고 보는 이는 별로 없다.

'캐츠' '오페라의 유령' '미녀와 야수' 등 영미 원작 뮤지컬을 서양식과 가부키식의 두 갈래로 소화하곤 하는 시키의 레퍼토리 역시 한국관객에게까지 호소력을 발휘할 것으로는 여겨지지 않는다.

오히려 규모는 작지만 아이디어가 풍부한 소극장 연극의 다양한 흐름은 연극교류의 폭이 넓을 경우 충분한 자극원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국의 뮤지컬 기본관객이 3만명인데 반해 시키의 정기회원은 26만명이라는 식의 '규모의 비교' 는 사실상 큰 의미는 없다.

대중성과 상업성의 두터운 전통 속에서도 다양한 무대를 안정적으로 생산해내는 시스템 면에서, 일본 연극은 분명 경쟁력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후남 기자

▶한.일 교류전망 = 오태석 작.연출의 '부자유친' 일본공연을 보고 반한 인연으로 한국에 온 연극 프로듀서 기무라 노리코는 "한국이든 일본이든 서로에 대해, 더구나 현대극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고 한다.

끊임없이 서구지향적인 것이 일본문화의 시선이고, 한국문화 역시 '가깝고도 먼' 관계를 벗어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애니메이션.영화.가요 등 본격화될 한일교류에 위협을 느끼는 '뜨거운' 장르와 달리, 연극은 한.중.일 세 나라의 '베세토연극제' 등 오히려 교류 폭을 넓히려는 데 뜻을 모으는 형편이다.

일본에서 작가 겸 연출자로 활동 중인 재일교포 츠가 고헤이 (한국명 김봉웅) 의 다음 작품 '뜨거운 파도 - 여형사 이야기' 는 그래서 관심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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