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여야 수장들의 ‘여름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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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게 쉬는 게 아니다. 정국 흐름의 중심에 선 세 사람은 지금 머리를 싸맨 채 ‘사람’ 고민을 하고 있다. 휴가를 마치고 6일 돌아온 이명박 대통령은 개각, 청와대 개편 등 인사 보따리를 풀 채비를 하고 있다. 6선 의원이 되느냐 고비 앞에서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양산 출마 여부에 답을 내야 한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에게도 빈 당직에 누구를 앉히느냐를 묻는 문제지가 놓여 있다.

이명박 대통령 ‘개각’

바꿔야 할 사람들은 있겠지만 쇄신 측면보다 효율을 더 높이고, 더 성과를 내기 위해 한다는 생각이다(7월 27일, 라디오 연설 특집 대담에서) / 최근 개각 등을 놓고 이런저런 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거기에 좌우되지 말고, 물러날 때 물러나더라도 소신껏 일해 줬으면 좋겠다(이명박 대통령, 지난달 21일 국무회의).

“총리 유임 땐 장관 큰 폭 교체”
휴가 마친 MB, 총리 구상 여전히 오리무중

이명박 대통령이 3박4일간 휴가를 마치고 6일 오후 상경했다. 이 대통령은 휴가 동안 ▶개각과 청와대 개편 방안 ▶집권 중반기 국정운영의 기조를 담을 8·15 기념사 등에 대한 구상을 다듬었다고 한다. 그 고민의 결과는 무엇일까.

◆‘총리 컨셉트’ 잡았을까=이 대통령의 휴가 전 여권에선 ‘8·15 전후 중폭 개각’이 대세였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한마디 언급 없이 침묵하며 휴가를 떠나면서 “개각이 늦춰질 것” “소폭 개각에 그칠 것”이라는 추측이 쏟아졌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대폭 개각과 정치인 입각을 공개 요구한 것은 이런 흐름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다.

이와 관련, 청와대 참모들은 “이 대통령이 여당 요구 등을 고려해 어떤 컨셉트(개념)로 총리를 바꿀지 집중 고민했을 것”이라며 “총리 컨셉트만 정해지면 나머지 개각은 오래 안 걸린다”고 말했다. 한 측근도 “이 대통령이 휴가 중 했을 ‘총리 구상’을 바탕으로 주말께부터 인사 논의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 실무 차원에서 인사 검증 작업이 상당히 진척됐으며, 이 대통령의 결단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인사 검증과 관련해선 체크 리스트 형식으로 개선된 상세한 자기 검증 진술서를 받아 효율성을 높이는 검증이 진행됐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염두에 두고 있는 총리감이 오리무중이다. 당초 거론되던 ‘충청권 총리론’을 놓곤 자유선진당과 의견 조율이 쉽지 않은 분위기다. 대안으로 ‘50대 총리설’ ‘여성 총리설’ 등이 나왔지만 적임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내년 4월 서울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대비해 외교에 강한 한승수 총리를 유임시키고, 대신 장관을 많이 바꿀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대북 메시지’ 방향 바뀌나=이 대통령 휴가 동안에는 8·15 기념사 구상에 영향을 미칠 만한 일들이 있었다. 당장 북한의 미국 여기자 전격 석방이 그렇다. 휴가 전 청와대 참모들은 “8·15 기념사에 북한에 대한 파격적 대화 제안이나 압박성 발언 같은 대북 메시지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 기자들을 풀어준 북한이 개성공단 직원 유모씨 문제에 대해선 언급조차 없는 상황이 이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미국 기자 석방 관련 상황이 휴가지에 있는 대통령에게 상세히 보고됐다”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대북 메시지의 수위를 다시 고민하는 계기가 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임두성 의원이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된 것도 대통령 휴가 중 벌어진 일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 사건을 계기로 8·15 기념사에 정치권의 자정을 촉구하는 내용이 포함될 수 있다”며 “그렇지 않아도 이 대통령은 8·15 기념사에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에 따르는 도덕적 의무)’ 문화 강화를 언급할 예정이었다”고 전했다.

남궁욱 기자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출마’

국정이 어려운 시기다. 당내 여러 사정도 있는 만큼 때가 되면 결정하겠다(8월 5일, 언론 인터뷰에서)

양산에 집 구한 박희태 출마 시 대표 사퇴 놓고 장고
장광근 총장 “사퇴 전제돼야”

경남 양산 국회의원 재선거 출마를 저울질하는 박희태 대표에게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고민거리를 제공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장광근 사무총장이다.

장 총장은 6일 오전 라디오 인터뷰에서 박 대표의 재선거 출마와 관련해 “박 대표뿐 아니라 어느 분이라도 백지상태에서 출발해야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백지상태란 박 대표가 재선거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 대표직을 내놓아야 한다는 의미다. 사무총장은 재·보선 공천 업무를 주관하는 사람이다. 그런 만큼 장 총장의 발언은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친이계 인사들은 장 총장의 발언이 박 대표의 출마에 부정적인 여권 핵심부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친이계 한 초선의원은 “박 대표가 대표직을 지니고 출마할 경우 선거가 ‘정부 심판론’으로 흘러 부담이 너무 커진다”며 “ 휴가를 마친 뒤 이번 주 중에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친박 측에선 “당 대표직을 유지한 채 나가는 게 좋다”는 입장이다. 박 대표가 대표직을 그만둘 경우 조기 전당대회론이 다시 불거질 수 있는 등 지도부 개편 바람이 이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선거전에서 박근혜 전 대표의 지원이 필요한 박 대표로선 대표직을 던지기도 어려운 셈이다.

고민에 빠진 박 대표 측은 일단 출마 채비부터 갖추고 있다. 박 대표는 이날 양산에 집을 마련했다. 한 측근은 “예비후보 등록 역시 조만간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양산 출마를 준비해온 김양수 국회의장 비서실장의 사표도 이날 수리됐다. 17대 총선 때 양산에서 당선된 김 실장은 박 대표와 공천 경쟁을 벌이겠다는 입장이다.

강주안 기자

정세균 민주당 대표 ‘인사’

유능한 야당의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쪽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 대폭 바꾸고 그러진 않을 것이다(2일, 언론인터뷰에서)

또 386의원 중용될까
정세균 2기 참모진 개편 때 민주당 요직에 기용 가능성

장외 투쟁 중인 민주당 정세균 대표의 머릿속에는 ‘2기 체제’를 꾸려갈 당직 인선 구상이 한창이다. 정 대표는 지난해 7월 2년 임기의 당 대표에 취임했다. 민주당 주요 당직자는 미디어법이 통과된 뒤인 지난달 29일 일괄 사표를 낸 상태다.

정 대표가 조직의 안정을 중시하는 스타일이어서 “개편 폭이 크진 않을 것”(강기정 대표 비서실장)이라고 하지만 당 안팎의 관심은 크다. 오래전 사의를 밝힌 박병석 정책위의장과 김유정 대변인, 박선숙 홍보·미디어 위원장 등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데다 내년 지방선거를 겨냥해 인적 쇄신을 추진할 혁신기구 출범까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관심의 초점은 정 대표 체제를 뒷받침해온 386 원외 인사들이 중용될지 여부다.

당내에선 열린우리당 대변인을 지낸 우상호(81학번) 전 의원이 김 대변인의 후임을 맡고, 오영식(85학번) 전 의원이 당직을 맡을 거라는 소문이 나돈다. 이런 인선이 현실화되면 유임이 유력한 강기정(82학번) 실장과 윤호중(81학번) 전략기획위원장 등과 함께 당 대표의 핵심 참모직 대부분을 ‘정세균 체제’ 출범의 공신들인 386 전·현직 의원들이 꿰차는 셈이다.

특히 정 대표가 미디어법 정국에서 단식-의원직 사퇴-장외투쟁 등 연이은 초강수로 비주류 등의 견제를 잠재웠다는 점도 ‘386 중용설’이 힘을 받는 이유다.

비주류의 시선은 곱지 않다. 호남 지역구의 한 의원은 “지금도 대표가 386들에게 휘둘리는데 이들의 주도권을 강화하는 당직 개편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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