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들 개성 듬뿍 담긴 친필 서명본 모아 전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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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늘 고마운 김종규 사장님. 부끄러운 최불암 올림.’

연기자 최불암(69)씨가 1991년 자전 에세이 『최불암, 그게 무엇이관데』를 김종규(70·사진) 당시 삼성출판사 사장에게 전하며 책장에 남긴 글이다. 국민배우로 한창 명성을 날리던 저자의 겸손함이 담겨있다. 서울 구기동 삼성출판박물관이 10일 개막하는 ‘책을 건네다:저자서명본 전’에는 이 책을 포함해 100권이 전시된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고은·김지하 시인, 소설가 김주영·김훈·박범신·신경숙씨, 도올 김용옥, 고 중광스님, 만화가 박재동씨 등 우리 시대가 손꼽는 문화계 인사들의 친필 서명본이다. 모두 문화계의 마당발로 이름난 김종규 삼성출판박물관장이 건네 받아 모아둔 책들이다.

“저자들은 책을 받는 상대방의 이름 뒤에 ‘받아 간직해주십시오’란 뜻을 지닌 ‘혜존(惠存)’을 적는 등 자신을 낮추곤 합니다. 좋은 인간관계란 바로 상대를 높이고 나를 낮추는 것에서 시작되지요.”

친필 사인에는 100인 100색 개성이 담겼다. 만화가 박재동(57)씨는 김종규 관장의 캐리커처를 정성스레 그렸고, 중광(1934~2002) 스님은 책 받는 이의 성씨 ‘김(金)’자에 장난스레 눈동자를 그려넣었다. 도올 김용옥(61)씨의 서명은 그림과 글씨, 전각까지 어우러진 한 폭 수묵화다. 반면 이름 두 글자에 인장 하나 간단히 찍은 시인 구상(1919~2004), 귀퉁이에 숨겨놓듯 적 은 소설가 신경숙씨(46)의 서명은 간결해서 오히려 눈에 띈다.

김 관장은 “언젠가는 이런 전시를 하리라 마음먹고 저자서명본만 따로 모아뒀다”며 그 뜻을 말했다.

“저를 ‘마지막 동생’이라 불러주신 구상 시인께선 늘 ‘인연을 살려 쓸 줄 알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자서명본에는 그렇게 인연과 소통을 소중히 여기는 깊은 문화적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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