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해파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5면

그리스신화에서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만든 괴물 중에는 고르곤이라 불리는 세 자매가 있었다. 막내인 메두사만은 아름다운 용모를 갖고 있었다. 전쟁의 여신 아테나의 신전에서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사랑을 나눈 탓에 메두사는 아테나의 저주를 받았다. 추악한 얼굴과 독사 머리카락을 갖게 됐다. 메두사를 쳐다보는 사람은 돌로 변했다. 영웅 페르세우스는 방패에 비친 메두사의 모습을 보며 접근해 메두사의 목을 자르는 데 성공했다.

하늘거리는 촉수를 가진 해파리는 메두사의 머리와 닮았다. 실제로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메두사가 해파리를 지칭하는 단어로 쓰인다. 해파리는 산호·말미잘과 함께 자포동물로 분류된다. 주머니에 입과 항문을 겸한 구멍이 하나 뚫린 단순한 구조다. 수천 개의 세포마다 작은 침이 하나씩 들어 있어 촉수를 건드리면 침이 한꺼번에 튀어나온다. 해파리에게 쏘이면 상처를 입고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독소로 인해 호흡 곤란과 근육 마비, 심장마비를 겪기도 한다.

중세시대 유럽에서는 자포동물이 식물로 간주됐다. 18세기에는 동물과 식물 중간쯤으로 인식됐고, 19세기에야 비로소 동물로 분류됐다. 해파리는 정약전이 1814년에 저술한 『자산어보』에도 등장한다. ‘다리’라는 표현을 쓴 정약전은 해파리를 동물로 인식했다.

해파리의 생활사는 복잡하다. 난자와 정자가 만나 탄생한 플라눌라는 바닷속을 헤엄치다 단단한 물체의 표면에 붙어 꽃처럼 생긴 폴립으로 자란다. 폴립은 호떡을 포개놓은 듯한 스트로빌라로 자란다. 스트로빌라의 마디 하나하나가 해파리로 자란다.

요즘 남해안에는 해파리가 대규모로 출현하고 있다. 해운대 해수욕장에서는 그물·뜰채로 걷어내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해파리 피해가 한 해 3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해수욕객이 쏘이는 것뿐만 아니라 그물 훼손이나 조업 포기 등 어업 피해도 적지 않다. 원전 냉각수 취수도 어렵게 만든다.

해파리는 지중해·북해·발트해·카스피해·멕시코만 등지에서도 골칫거리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해수 온도의 상승, 육지에서 흘려 보낸 오염물질로 인한 부(富)영양화, 해파리를 먹는 물고기의 남획이 원인으로 꼽힌다. 모두 사람 탓이다. 해파리를 뜯어먹는 말쥐치를 방류하고 있지만 근본 해결책은 아니다. 그렇다고 바다를 메두사로부터 구해줄 21세기의 페르세우스가 하늘에서 떨어질 리도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