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의 한국 중기인, 깐깐한 미국 업체 뚫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 미국 시카고에 있는 인터내셔널사에서 한 트럭 딜러가 동진정공의 백미러가 달린 트럭 앞에서 ‘품질이 최고다’라는 손짓을 하고 있다.

미국의 최대 트럭.버스.디젤엔진 제조업체인 나비스타 인터내셔널(www.navistar.com).

시카고 인근 윈필드에 있는 이 업체는 지난해 매출이 73억4000만달러(약 8조5300여억원)에 이르는 굴지의 기업이다. 그런데 2002년까지는 해외 업체에서 부품을 조달받은 적이 없었다. 전적으로 미국 부품업체에만 의존해 완제품을 생산했다. 이런 회사에 한국의 한 중소기업이 각고의 노력 끝에 납품에 성공했다. 경기도 평택에 있는 중소기업인 동진정공(www.djpc.co.kr)이 인터내셔널에 트럭용 백미러(리어미러)를 연간 100만달러(11억6000여만원)어치 이상 팔고 있는 것이다.

◇해외로 진출하려는 끈질긴 노력="2년여 동안 쫓아다녔습니다. 아무리 미국 내에서만 부품을 공급받는 회사지만 품질이 좋고 가격이 싼데 거부할 리가 없다는 생각을 했죠. KOTRA 시카고무역관이 중간에서 큰 역할을 했습니다."

동진정공 정승동(53)사장은 "인터내셔널과 거래를 트기 위해 석달에 한번 정도 시카고로 출장을 갔다"고 말했다. 자동차용 백미러와 플라스틱 금형을 만드는 동진정공은 국내 업체에만 제품을 공급해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해외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70여명의 직원이 연 150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리는 중소기업이 해외 납품 정보를 얻을 길이 막막했다. 그래서 정 사장이 찾은 곳이 KOTRA 시카고무역관이었다. 2000년 7월 동진정공의 미국지사 역할을 무역관이 대신해 주는 이른바 '지사화업체'로 선정됐다. 시카고무역관은 그해 9월 인터내셔널이 부품을 해외에서 조달할 움직임이 있다는 정보를 알아냈다. 동진정공은 즉각 무역관을 통해 자신들이 생산하는 백미러의 샘플과 가격 조건 등을 인터내셔널 측에 보냈다. 이듬해 시카고에서 열린 북미자동차 부품 전시회에도 참가했다.

마침내 2002년 6월 인터내셔널 측에서 연락이 왔다. 20만달러어치를 사겠다는 통보였다. 이 회사의 첫 해외 아웃소싱이었다. 정사장은 첫 거래 이후 백미러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10여차례나 시카고행 비행기표를 샀다. 끈질긴 상담과 설득 끝에 현재 연간 100만달러어치를 이 회사에 공급하고 있다. 박범훈 시카고무역관장은 "대형 업체에 꼭 물건을 납품하겠다는 의지가 성공 요인"이라면서 "지금은 A/S용 마켓(깨진 부품을 대체하는 시장)에만 백미러를 공급하지만, 앞으로 콤비네이션 마켓(트럭 제조단계에서 공급)까지 들어갈 가능성이 커 납품 규모는 현재의 2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품질과 가격 그리고 적기(適期) 공급="공장은 한국에 있지만 우리 회사와 1마일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회사처럼 적기에 부품을 공급합니다. 물론 품질도 좋고요."

인터내셔널 본사에서 만난 부품구매 담당 매니저인 밀란 스티븐 히니치는 "다른 업체 제품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가격은 20~30%가량 싸다"고 말했다. 동진정공은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제때 공급하지 못하면 거래가 끊길 수 있다는 생각에 중소기업진흥공단과 공동으로 미국 미주리주 스피링필드에 제품 보관창고를 마련했다.

정 사장은 "한달치 이상의 제품을 쌓아놓고 공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내셔널의 트럭 딜러인 샌디 로버트슨은 "동진 제품을 써 본 운전자들의 불평을 들은 적이 없다"는 말로 품질의 우수성을 설명했다. 다른 회사 부품에 비해 동진정공의 성공적인 진출로 한국 부품업체를 보는 인터내셔널의 시각이 좋아져 국내 2~3개 업체가 부품 공급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인터내셔널의 트럭 부품 공급담당 매니저인 제니스 타리아페로는 "동진정공은 제품의 질과 공급 시기에 있어 우리를 99.6% 만족시키고 있다"면서 "앞으로 거래를 늘려갈 뿐만 아니라 한국의 다른 부품업체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시카고=김동섭 기자

<동진정공, 백미러 납품 성공 일지>

■2000년 7월:동진정공, 미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시카고무역관에 '지사화업체' 등록

■2000년 9월:시카고무역관, 인터내셔널사의 부품 해외 아웃소싱 정보 입수

■2001년 6월:동진정공, 시카고 북미자동차 부품 전시회 참가

■2001년 6월~2002년 6월:동진정공 사장, 수차례 시카고 방문 상담

■2002년 6월:동진정공, 인터내셔널사와 20만달러어치 첫 거래

■2003년 7월:동진정공, 시카고 통합구매 상담회에 참가해 거래물량 연 100만달러어치로 확대

■2004년 5월:인터내셔널사 구매담당자, 서울 대형업체 부품상담회에 참가해 동진정공 공장 방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