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가르침 그대로…빚 탕감해주고, 공과금 내주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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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서울 창신동은 봉천동과 함께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로 꼽혔던 곳이다. 지금은 산동네가 개발되면서 많은 연립주택이 들어섰지만 아직도 곳곳에 '쪽방'이 남아 있다. 인근 동대문 시장에 옷을 납품하는 봉제공장도 많다.

이곳 성터교회(방인성 목사)에서 지난달부터 '부채 탕감'이란 독특한 운동을 벌이고 있다. 교인들 사이에서 꾸고 빌려주었으나 현재로선 갚을 길이 없는 빚을 '없던 일'로 하자는 것이다. 또 사정이 어려운 지역 주민의 공과금을 대납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성터교회는 올해 설립 50주년(禧年)을 맞았다. 방 목사는 "구약성경에서도 고대 이스라엘인은 50년 주기의 희년에 노예를 풀어주거나 빼앗았던 땅을 돌려주었다"며 "그런 성경의 가르침을 오늘의 현실에 맞게 원용한 셈"이라고 말했다.

성터교회의 신자 수는 200여 가구에 450명 정도. 7월 한 달간 다섯 가구가 많게는 1000만원 이상에서 적게는 100만원 못되는 돈까지 다른 집의 빚을 없애주었다. 빚을 탕감해준 사람이 예배 시간에 자신의 '결단'을 적은 글을 봉헌하는 식이다.

방 목사는 "신자끼리 빚을 청산하는 게 자본주의 원리에 어긋나는 것은 아닌지 논란도 있었다"며 "돈 때문에 빚어진 갈등을 풀고 이웃 관계를 회복하자는 취지에 교인들이 동감했다"고 밝혔다. 부채 탕감 운동은 연말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성터교회는 이런 나눔의 정신을 확대, 지역 내 40가구의 의료보험료.전기료.수도료.가스비 등을 대납했다. 동사무소에서 명단을 받아 가구당 5만~30만원을 지원했다. 지난달 21일에는 지역 청소년을 위한 공부방도 마련하기도 했다. 교회 측은 앞으로 1년간 공부방에 1000만원을 지원할 계획이다. '희년의 기쁨'을 교회 신자만이 아닌 지역 주민과 함께하자는 뜻에서다.

방 목사는 "요즘 기독교 안에서도 개혁을 부르짖는 소리가 높지만 교회 부흥이 목표인 경우가 많다"며 "개혁의 핵심은 어려운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사랑의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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