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1달러 1210원대 … 원화가치 상승의 두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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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연중 최저치인 1218원을 기록했다. 4일 서울 을지로 외환은행 본점에서 위폐 감식 전문가인 서태석 부장이 달러화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달러당 1218원. 4일자 원화가치의 종가다. 전날보다 4.4원 오르면서 연중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물론 지난해 10월 14일(1208원) 이후 10개월 만에 가장 높다.

외환시장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고 있다. 끝없이 하락할 것 같았던 원화가치가 이젠 상승세로 방향을 틀었다.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튼튼해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국내에 달러 기근이 촉발되면서 원화가치는 쑥쑥 빠졌다. 11월엔 달러당 1500원대로 떨어졌다. 이후 점진적인 상승세를 타다 올 3월 초 다시 1500원대로 급락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됐다. 그러나 그게 마지막이었다. 원화가치는 3월 중순 달러당 1300원대, 4월 말 1200원대로 올라가더니 이제는 1100원대를 목전에 뒀다.

원화가치의 상승, 즉 국내에서 달러가치의 하락은 달러 가뭄이 해갈됐다는 뜻이다. 올 상반기 은행들이 중·장기(만기 1년 초과)로 들여온 외화는 지난해 하반기보다 189%나 늘었다. 줄어들던 외환보유액도 3월 이후 증가세로 반전한 뒤 7월 말엔 2375억1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한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로 위기를 벗어나고 있다는 신호가 포착되자 외국인 투자자들은 올 들어 18조8000억원(순매수)어치의 주식을 쓸어 담았다. 4일 코스피지수가 전날보다 1.39포인트(0.09%) 오른 1566.37에 거래를 마치며, 연일 연중 최고치를 기록한 것도 외국인 투자자들이 5400억원어치를 순매수한 영향이 컸다.

원화가치의 상승은 양면성을 띤다. 좋은 소식인 동시에 나쁜 소식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일단 원화가치가 오르면 우리 경제주체들의 구매력이 커진다. 기업은 해외에서 투자나 인수합병(M&A)을 더 편하게 할 수 있고, 개인은 해외여행이나 유학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 특히 ‘기러기 아빠’들에겐 희소식이다.

또 통화옵션상품인 ‘키코’에 가입한 중소기업들의 손실 부담도 크게 감소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와 은행권에 따르면 키코 거래기업의 평가손실 규모는 지난해 11월 말 2조2000억원까지 불어났지만 올 5월 말에는 6300억원으로 급감했다.

반면 경기회복을 이끌고 있는 수출기업들엔 부담이 된다. 올 들어 한국 경제의 회복 속도가 빨랐던 것은 원화가치 하락을 등에 업고 수출기업이 공격적인 마케팅을 폈던 게 주효했는데, 앞으로는 여기에 브레이크가 걸린다는 얘기다.

기업들은 경영계획을 다시 짜야 할 판이다. 예컨대 포스코는 올 4분기 달러당 원화가치를 1230원에 놓고 경영계획을 짰다.

그러나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원화가치가 상승하자 하반기 경영계획을 다시 세워야 할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원재료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제품의 30%를 수출하는 포스코로선 환율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포스코 재무실 관계자는 “원화가치의 상승 속도가 예상치를 크게 웃돌고 있다”며 “얼마 전 3분기 경영계획을 마무리했는데 원화가치가 더 오른다면 수정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준현·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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