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 발주 공사 입찰심사 교수 “건설사가 1000만원 상품권 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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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건설업체가 조달청 입찰 심사위원인 모 대학 교수에게 뇌물로 준 백화점 상품권(10만원권 100장)과 대화가 녹음된 CD, 공사입찰설명서. [안성식 기자]

유명 사립대 이모(59) 교수는 4일 “공공 기관이 발주한 공사의 입찰심사를 전후해 건설사들이 금품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로비를 시도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달 파주시가 발주한 교하신도시 복합커뮤니케이션센터 건립공사 입찰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다. 그는 이날 자신의 연구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K건설회사 영업팀장이 지난달 말 ‘좋은 점수를 줘서 고맙다’고 1000만원어치의 상품권을 건넸다”고 말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K건설 영업팀장 J씨는 지난달 말 그의 사무실을 직접 찾아왔다. 금색 봉투 2개를 내밀며 “다음 주께 상무님께서 더 들고 오실 거다. 심사위원들께 드리는 액수가 정해져 있다”고 말했다고 이 교수는 전했다. 봉투 하나당 10만원권 상품권이 50장씩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기자회견장에서 상품권을 증거물로 내놓았다.

이 교수는 심사 당일인 지난달 17일 오전 5시에야 심사위원 선정 통보를 받았다. 건설사들의 사전 로비를 막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이 교수는 이미 심사 일주일 전부터 ‘회사를 알리고 싶으니 한 번만 만나 달라’는 건설업체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심사위원 후보자 명단을 누군가 건설업체에 넘겨준 것 같다”고 했다.

심사위원 선정이 통보된 직후부터 알 수 없는 전화가 쇄도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디자인이 훌륭해 K건설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줬을 뿐인데, 이후 J씨가 ‘꼭 한 번 만나고 싶다’고 거듭 부탁했다”며 “이에 응하자 상품권을 들고 찾아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J씨가 상품권을 건넬 당시의 대화를 모두 녹음했다. “고발을 하려면 증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3년 전 한 지방 국립대 공사 입찰에서 청탁을 받고 당시 지역 경찰서에 신고했지만, 증거가 없다고 내사종결을 하더라”며 “이번엔 검찰에 배임 혐의로 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학 이후 미국에서 20년을 살았다는 그는 한국 건설업계에 대해 “부패의 극치”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그동안 굴지의 대기업을 포함해 네 곳의 건설·전자업체로부터 청탁을 받았다”며 “이번엔 ‘본때를 보여주자’ 싶어 폭로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솜방망이 처벌 때문에 건설사들이 로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혐의를 입증하기도 어렵고, 입증하더라도 기껏 벌금 몇 억원을 부과하는 게 전부”라며 “한 번 입찰 받으면 수천억을 벌 수 있는 기회인데 그 정도 벌금이 두렵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 파주시 김영구 건설교통국장은 “공공 공사 입찰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심사위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등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K건설 J팀장은 "상품권을 준 건 맞지만 심사가 끝난 뒤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 것뿐”이라며 "대가성은 없었다”고 말했다.

정선언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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