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이영일]중국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의 피해자일 수 있다

중앙일보

입력

북한의 핵문제만큼 상식적 판단과 전략적 판단 간에 간격이 큰 문제도 드물 것이다.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개발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에 비추어 주변대국들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안보위협요인이다. 중국은 상식적 판단에서 보면 다음 두 가지 면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의 피해자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북 핵을 심각한 안보위협요소로 간주, 폐기를 서두르는 국가는 미국이고 중국은 자신에게 닥아 올지도 모를 피해보다는 미국과 북한사이에서 핵문제를 놓고 조정자역할을 하는데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서 필자는 상식과 전략사이의 갈등을 실감한다.

우선 중국은 북한과 500마일에 걸쳐서 국경을 맞대고 있다. 때문에 군사적 견지에서 보면 북한의 핵무장이나 장거리 미사일 배비(配備)는 중국안보의 실질적 위협이 아닐 수 없다. 현재의 북한과 중국 관계만을 본다면 이러한 견해는 기우(杞憂)같지만 인접국가들 간의 갈등의 긴 역사에서 보면 결코 기우일 수만은 없다. 과거 북한이 중국을 수정주의라고 공격하면서 자주 외쳤던 “주체”나 “우리식대로 산다” 또는 “조선민족제일주의”를 강조하는 구병복발(舊病復發)의 경우나 또 북한내부에 역사적으로 잠재되어 있는 반중정서(反中情緖)(黃長燁 回顧錄, pp280-282參照)를 짚어 보면 결코 기우가 아닐 수 있다.

둘째로 현재 중국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아시아 대륙의 유일한 유엔 상임이사국으로서 핵, 탄도미사일 등 공격용 전략무기를 가질 수 있는 공인된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지위는 바야흐로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개발에 의하여 도전받고 있다. 북한은 NPT를 탈퇴한 후 핵실험을 두 차례에 걸쳐 단행했고 대포동 2호를 비롯한 탄도미사일을 개발, 발사시험을 자행했는데 이것의 명분은 미국의 북한압살정책에 맞서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핵무기와 미사일이 놓여있는 위치와 기능은 중국이 누리는 전략적 지위를 분점(分點)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

중국은 이상에서 지적한 사정을 꿰뚫어 보면서도 겉으로는 북한의 핵문제를 미국과 북한간의 양자(兩者)문제로 정의하고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더 많이 수용하거나 양보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처럼 대응해 왔다. 북한 핵문제를 6자회담의 협상과제로 만들어 6자회담을 진행시키는 의장국이 된 후에도 중국은 이 회담의 틀을 이용, 미국과 북한간의 양자대화의 기회를 마련해주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북한의 제2차 핵 실험은 북한의 핵이 결코 협상으로 포기될 핵이 아니라 핵보유국의 지위를 갖겠다는 핵 암(核癌)임이 입증되었고 6자회담을 통한 기왕의 모든 합의는 사실상 백지화(白紙化)되었다. 결국 북한은 외견상으로는 핵 폐기 협상을 하면서 실제로는 핵과 미사일 개발을 꾸준히 밀고 나왔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도 중국의 북 핵을 보는 태도는 2중적이다. 즉 유엔안보리의 제재결의에는 찬성하면서도 유엔안보리의 적극적인 대북제재에 대해서는 한발 뒤로 물러선다. 상식적으로 보아 중국은 북한 핵의 묵인이나 방치가 자국안보상 양호유환(養虎遺患)이 될 수 있는데도 직접 앞장서서 북 핵 폐기를 서두르지 않고 있다. 이것은 상식 아닌 중국의 전략적 판단에 기인하는 것 같다.

그동안 북한은 핵개발의 명분을 미국의 대북압살정책 내지는 적대정책에서 구하고 있지만 이 주장은 실제 상황에 부합하지 않는다. 미국은 그간 북한의 핵 포기를 유도하기 위해 클린턴 정권으로부터 최근 부시정권에 이르기까지 수십만 톤에 달하는 식량과 중유를 북한에 제공했다. 위폐, 위조담배, 마약 등 불법행위를 알면서도 BDA에 묶여 있던 돈을 북측이 되찾아가도록 풀어주었고 테러지원국 명단에서도 해제해 주었다. 이러한 행동에 미루어볼 때 과연 미국이 북한정권을 적대시 하고 압살하려는 정권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까.

상식적 견지에서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은 미국본토보다는 중국이나 일본에 실질적으로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물론 9.11의 비극을 겪은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핵물질이 알카에다 같은 테러리스트 수중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야겠지만 테러리스트들의 위협은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중국이나 러시아에도 상존하고 있다. 북한정권이 입장을 바꾸면 중국은 미국보다 훨씬 더 큰 북 핵과 미사일의 위협 앞에 노출될 수 있고 북한이 핵보유국지위를 얻게 되면 중국의 아시아대륙에서의 핵독점지위는 무너지고 북한다루기는 훨씬 어려워진다.

일부 중국 전략가들은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가 지나치게 강할 경우 북한정권이 붕괴되고 그럴 경우 수많은 난민들이 중국영토내로 몰려올 부담을 우려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북한이 중국 동북지방안보의 방어막이 된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이론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핵과 미사일 개발 같은 무리한 군비투자로 인민경제를 파탄시키면서 3대에 걸친 정권세습(政權世襲)을 꾸리고 있는 金正日 정권을 중국이 계속 지지하자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오히려 중국에 상식에 걸 맞는 정책이 있다면 그것은 북한 땅에서 세습권력의 지배가 종식되고 주민들에게 핵이나 미사일 대신에 빵을 주는 정권이 탄생되도록 지원하는 정책일 것이다. 상식과 전략이 충돌할 때 상식을 쫓는 것이 인간사의 정도이기 때문이다.

우석대학교 초빙교수 이영일

※중앙일보 중국연구소가 보내드리는 뉴스레터 '차이나 인사이트'가 외부 필진을 보강했습니다. 중국과 관련된 칼럼을 차이나 인사이트에 싣고 싶으신 분들은 이메일(jci@joongang.co.kr)이나 중국포털 Go! China의 '백가쟁명 코너(클릭)를 통해 글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