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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결국 민주화로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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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15년 전 팡훙인은 천안문 광장에서 반정부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2~3년 전에는 베이징에서 TV 쇼를 진행했다. 당시 그는 중국 검열 당국의 '관용의 한계'를 자주 시험했다. 요즘 그는 상하이에서 TV 방송국을 운영한다.

후슈리도 같은 세대에 속한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그를 '중국에서 가장 위험한 여인'이라고 불렀다. 그는 요즘 당 기관지와 손잡고 '차이징(財經)'이란 잡지를 만든다. 차이징은 기업인과 관리의 부패를 주로 파헤친다.

그렇다고 중국의 민주주의가 코앞에 다가섰다고 해석해선 곤란하다. 차이징이 관료 부패를 파헤치는 것을 당이 허용하는 이유는 부패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협상의 주역을 맡았던 룽융투(龍永圖)는 "최초의 민권은 탈 가난에서 나온다. 중국에선 지난 15년 새 2000만명이 가난에서 벗어났다. 지금은 7억명의 중국인이 전기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 15년 전이라면 생각할 수 없었던 사치다. 성장이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하는 이유다"고 말했다. 민주보다는 성장이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민주주의 없이도 잘 지낼 수 있을까? 몇 해 전 당시 포린어페어스의 편집장이었던 파리드 자카리아는 민주주의에 부여돼 온 '우선권'에 의문을 표시했다. 자카리아는 민주주의를 그저 '자유선거를 통해 정치 지도자를 선택하는 가능성'으로만 파악했다. 세계는 '인권을 짓밟는 민주주의'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 자카리아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인도의 경우는 얘기가 좀 다르다. 인도는 나라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있을 때 선거가 그 경로를 바꾸는, 강력하고 효과적인 수단일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인도 경제는 중국 경제가 보여준 성장 속도와 거의 맞먹는 빠르기로 팽창해 왔다. 자연 불평등과 부패도 늘어났다. 인도 유권자들은 바로 이런 모델, 즉 '경제 성장=부패+불평등 심화'라는 공식을 거부했다. 이런 현상이 좋은지 나쁜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단기적으로는 나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면 얘기가 달라질지도 모른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 많은 불평등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란 질문이 중국에서는 아예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는 단순히 '전략상의 실수'를 막는 데 도움이 되는 수단만은 아니다. 많은 중국인이, 그리고 많은 중국 공산당원이 민주로의 이행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당이 국가 통제력을 상실하는 추세다.

중국의 정책을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위를 지녔던 마지막 지도자는 덩샤오핑(鄧小平)이었다. 요즘엔 20명의 정치국원이 모두 동의해야 어떤 결정이든 내릴 수 있다. 보다 중요한 결정일 경우 3000명 정도를 포괄하는 광범위한 '지도자 그룹'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현재 중국의 경제운용과 정치행위 사이에는 균열이 존재한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마치 왕조가 약화하면 지방정부가 자치권을 행사했던 과거의 예와 흡사하다.

이런 어려움을 감안해 당 지도부는 "한가지 길만 존재한다. 효과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능력이 있는 인물에게 책임을 맡기는 것이다. 그가 어떻게 선택됐건 그것은 중요치 않다. 설사 선거를 통해 뽑혔더라도 상관없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그렇다면 중국의 민주주의는 일반인들이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까이 다가와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민주주의가 도래한다면 그것은 결코 진(鎭)이나 촌(村) 등 기본 행정단위에서 이뤄지고 있는 '풀뿌리 민주정치 실험'에서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오히려 중국의 민주주의는 정치 엘리트들의 손에서 나올 것이다. 이들의 유일한 관심은 당의 지배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민해방군이나 군통수권을 쥐고 있는 당중앙군사위원회가 민주화를 용인할 수 있는 절대적 조건이다.

프란체스코 지아바치 이탈리아 보코니대 교수.경제학
정리=진세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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