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세종대왕의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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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자는 오랫동안 우리말의 적 (敵) 으로 여겨져 왔다.

조선시대를 통해 한문이 고급문화의 매체로 군림하는 동안 한글은 천한 글이라는 멸시를 받았다.

우리 민족의 고유한 맛을 담은 많은 토박이말이 한자어에 밀려 자취를 감춘 것도 아까운 일이다.

해방 후 우리 말과 글이 국어 (國語)가 된 뒤에도 법전 (法典)에서 신문에 이르기까지 한자의 남용은 수십년간 우리 언어생활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역사를 넓게 바라보면 한자가 한국어에 공헌한 바도 적지 않다.

한글 창제 전까지 천여년간 한자는 이두.향찰.반절 등의 형태로 한국어의 표기수단 노릇을 했다.

삼국시대의 세 나라 말은 오늘날의 사투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큰 차이를 가지고 있었음을 삼국사기 (三國史記) 지리지 (地理志) 등의 자료에서 알아볼 수 있다.

이것이 한국어라는 단일언어로 통합되는 데는 정치적 통일과 함께 음가 (音價) 의 표시방법인 문자의 존재가 필요했다.

어휘의측면에서도 한자에는 과 (過) 못지 않은 공 (功) 이 있었다.

한자가 들어오기 전의 우리 토착어에는 문명발전에 따른 개념의 증가를 수용하는 조어력 (造語力)에 한계가 있었다.

극히 뛰어난 조어력을 가진 한자가 있음으로 해서 토착어가 조어력을 키울 기회를 많이 가지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우리 민족이 급속한 문명발전에 낙오하지 않고 오늘에 이른 것은 한자를 이용한 덕분이 크다.

우리 토착어와 같은 알타이어계 (語系) 언어를 쓰면서 한자 이용을 외면한 다른 민족들이 걸은 길을 우리와 비교해 볼 만하다.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 목적은 한자 배격이 아니라 중국문명의 토착화에 있었다.

그래서 우리말 표기법인 훈민정음 (訓民正音) 과 중국말 발음법인 동국정운 (東國正韻) 의 제작을 나란히 추진한 것이다.

음소 (音素) 문자면서 동시에 음절 (音節) 문자라는 한글의 희한한 특징 역시 고유문화와 수입문명의 융화를 추구한 세종의 뜻을 보여준다.

세종의 뜻대로라면 민간의 문자사용이 늘어남에 따라 문화매체로서 한글의 비중이 서서히 커져야 했다.

이런 변화가 조선 후기에 제대로 일어났더라면 해방 후 '한자와의 전쟁' 이라는 '문화적 내전 (內戰)' 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 한글이 겨우 주인자리를 찾아놓고 보니 서양말의 쳐들어오는 기세가 무섭다.

손님자리로 물러난 한자의 힘을 이제는 아끼는 것이 세종이 뜻한 바와 같은 주체성을 살리는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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