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지펀드]세계경제 위협적 존재…미.일등 대책 강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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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헤지펀드들이 위기다.

세계 어느 곳이든 돈되는 곳이다 싶으면 뚫고 들어가 종횡무진하던 이들이 금융위기가 지구촌을 휩쓸면서 최대의 희생자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에다 아시아 신흥국가들은 물론 미국과 일본까지 나서 규제책을 마련하고 있어 이제 헤지펀드의 시대는 가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 운영자금 규모 = 헤지펀드의 자금운용 실태는 안개 속에 가려져 있지만 미 금융당국은 현재 약 1천개가 3조달러정도를 굴리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보유자금의 몇 배나 되는 돈을 각종 신종금융상품에 투자한다.

때문에 하루 운영자금은 최대 1천억달러를 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들이 많아야 하루 수십억달러로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감안할 때 이들의 가공할 자금력을 짐작할 수 있다.

또 90년만 해도 보잘 것 없던 헤지펀드들의 자산규모가 지금은 수십배가 늘어나 4천억달러에 달하는 것만 봐도 그동안 이들의 성장세를 짐작할 수 있다.

◇ 이어지는 실패사례 = 퀀텀펀드 등 상위 10개 헤지펀드의 91~96년 수익률은 34.8%로 투자가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한 투자실적을 올렸으나 최근에는 아시아.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금융위기로 인해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헤지펀드는 그동안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와 이들의 탁월한 분석력에 컴퓨터를 이용한 첨단 투자기법을 무기로 신흥시장에서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그러나 신흥시장의 붕괴는 그동안의 이익을 원금, 아니 그 밑으로 떼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업계의 황제로 불리는 조지 소로스는 러시아에서만 20억달러의 손실을 입는 등 최근 40억달러의 손해를 보았으며 줄리안 로버트슨은 6억달러의 손해를 보았다.

또 약 1천억달러를 굴리던 롱텀캐피털 (LTCB) 은 지난 8월 한달 동안에만 러시아등 신흥시장 투자에 실패, 자산의 44%를 날려버렸다.

그밖의 소규모 헤지펀드들 중에는 이미 파산한 곳도 있다.

◇ 구체화되는 규제 움직임 = 헤지펀드들이 엄청난 손실을 안고 도산할 위기에 처하자 미.일등 선진국 금융당국들이 이제는 규제해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은 LTCM 구제책이 발표된 지난달 25일 헤지펀드의 활동과 채권자들과의 관계에 대해 조사하도록 관계기관들에 지시했다.

미 하원 은행금융위원회의 짐 리치 위원장도 같은 날 내주 후반쯤 헤지펀드의 실태조사와 규제 검토를 위해 공청회를 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동안 규제 보다는 자본이동의 자유를 강조해왔던 미국에서조차 헤지펀드가 세계 경제에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되자 '규제론' 이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다.

일본의 미야자와 기이치 (宮澤喜一) 대장상은 지난달 29일 "단기자본의 대규모 이동을 규제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다" 며 이번 선진7개국 (G7) 회담때 헤지펀드 규제를 제안할 지 모른다고 말했다.

미국 신용평가기관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S&P) 는 이날 LTCM의 파산 위기를 계기로 헤지펀드들에 대한 신용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국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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