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막판 타결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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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은행 노사간의 합의로 추석을 앞두고 금융시장의 마비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막았다.

그동안 줄곧 팽팽한 의견대립으로 노사정 (勞使政) 이 평행선을 달려왔던 점을 감안하면 막판 타결은 극적이라 할 수 있다.

타결의 모양새도 나쁘지 않았다.

정부가 노사협상의 자율을 존중하고 은행이 기존의 감원계획을 수정키로 하자 노조가 파업을 거두는 식의 수순으로 이뤄졌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지난주 중반까지만 해도 계속 원칙을 고수하면서 강경대응을 공언해왔다.

노조가 요구한 감원계획 철회 및 1년치 임금에 해당하는 퇴직위로금 보장에 대해 양보할 의사가 없다는 뜻을 강조했었다.

이 때만 해도 타협의 여지가 거의 없는 듯했다.

그러다 지난 주말에 접어들면서 금감위가 융통성을 보이기 시작했고 막판엔 노조측 요구를 사실상 대부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에 따라 노조도 대화의 길을 열었고 협상장에서 경찰병력 배치와 관련해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심야협상 끝에 타협을 이끌어낸 것이다.

대립이 하룻밤새 해소된 데는 실제 파업할 경우 노사가 공멸 (共滅) 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적잖게 작용했다.

정부는 28일 부실은행에 대한 재정지원 방안을 발표했는데, 이들이 파업에 돌입할 경우 지원명분이 약해진다.

9개 은행중 정부지원 없이 살아남을 은행은 한 곳도 없기 때문에 노조가 무작정 파업에 매달리기도 어려웠다는 것이다.

정부도 파업으로 구조조정에 차질을 빚는 은행에는 지원을 않겠다는 뜻을 은근히 내비쳐 압박을 가했다.

그러나 협상타결로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개별은행의 사정에 따라 다시 잡음이 일어날 수 있다.

예컨대 상업.한일은행의 경우 이미 합병계약서에 '98년 6월말 기준의 동률감원 시행' 을 명문화했는데 이번 노사합의 결과는 이와 다른 내용이어서 해석이 분분하다.

또 평화은행은 설립된지 6년밖에 안됐는데 타은행과 수준을 맞추는 바람에 퇴직위로금이 11~12개월치 임금 (4급 이하) 으로 법정퇴직금보다 많아졌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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