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박태환, 김연아를 벤치마킹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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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베이징올림픽 무렵 TV를 통해 방영됐던 박태환 출연 광고의 한 장면. [중앙포토]

2007년 4월 IB스포츠는 피겨 ‘기대주’였던 김연아(19·고려대)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했다. 당시 김연아는 국내의 열악한 훈련 여건 탓에 악전고투 중이었다. IB스포츠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김연아에게 안정적인 훈련 여건을 갖춰 주는 일이었다.

세계적 지도자인 브라이언 오서(캐나다)와 전담코치 계약을 했고, 여건이 좋은 캐나다 토론토에 상주 훈련캠프를 차렸다. ‘기대주’를 ‘여왕’으로 키운 것은 세계적인 지도자와 체계적인 훈련이었다. 구동회 IB스포츠 부사장은 “선수에게 훈련보다 중요한 건 없다. (김)연아 매니지먼트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도 훈련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수영의 ‘기린아’ 박태환(20·단국대)이 위기다. 박태환은 로마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자신의 주종목인 자유형 400m와 200m에서 연거푸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박태환의 실패와 관련해 그간 감춰졌던 훈련 뒷얘기들이 하나둘 공개되고 있다. 세계적인 선수가 전담지도자 없이 떠돌이 훈련을 했다. 어떤 코치는 장거리를 권했고, 누구는 단거리에 적합하다며 단거리 훈련을 시켰다. 누가 지도하느냐에 따라 박태환은 단거리와 장거리 사이에서 길을 잃고 갈팡질팡했다. 김연아 사례와 천양지차다.

김연아는 최근 한 이동통신 업체로부터 거액의 광고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다. 촬영 횟수가 많아 훈련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태환은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 당시 1500m 예선을 앞두고 광고 촬영을 위해 서울에 다녀오려고 했다. 보고를 받은 이연택 당시 대한체육회장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제지해 무산됐다. 박태환은 이번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도 화보 촬영을 이유로 먼저 출국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회를 코앞에 둔 예민한 시점에서 디펜딩 챔피언이 광고 촬영에 나섰다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그를 지도하고 있는 노민상 대표팀 감독, 매니지먼트를 맡고 있는 ‘SK텔레콤 전담팀’의 ‘배임’이다. 이를 제지할 권한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감독 자리를 내놓거나, 매니지먼트 자격을 반납해야 옳을 것이다.

김연아도 얼마 전 아이스쇼 출연을 둘러싸고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불과 하루 만에 모든 게 정리됐다. 김연아의 어머니 박미희씨가 “앞으로는 연아를 아이스쇼에 출연시키지 않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박씨의 판단 기준은 항상 ‘딸의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되는가’ 여부다. 박태환 가족이 나서라는 얘기가 아니다. 김연아처럼 박태환도 훈련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코치진 개편 등을 포함한 지원 시스템을 이 기회에 정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박태환은 아직 젊고 할 일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장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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