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조 백일장] 7월 수상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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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 달의 심사평
소박한 언어로 그려낸 생존의 허기


시조백일장은 말 그대로 시조의 무대다. 그리고 시조는 고유한 형식이 있는 정형시다. 그럼에도 시조 아닌 작품, 시조에 가깝긴 하나 형식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작품들이 적지 않다. 투고보다는 형식 체득이 먼저다. 그런 다음 정서를 갈무리할 일이다.

이 달에도 전국 각지에서 고른 투고가 이어졌다. 으뜸 자리에 김대룡씨의 ‘일용할 햇빛’을 올린다. ‘화목 주변’에 ‘오종종 모여’ 호명을 기다리는 인간시장. ‘난장의 새벽 시간’을 시조 율격으로 받아낸 유연한 사유가 돋보인다. ‘복통’·‘안전화’·‘국밥집’ 등의 시어가 생존의 허기를 대변한다. 신선한 감각이 노역의 삶을 견인하고 있다.


차상은 유현주씨 차지다. ‘내시경’은 ‘아궁이’로 환치된 몸 속의 풍경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집어삼키는 욕망과 헛구역질하는 상처의 불화.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이 비유의 힘이요, 그 힘이 서정의 확장을 가능케 한다. 문맥에 묻어나는 억지스러움은 극복의 과제다.

차하는 김원씨의 ‘어머니 흰 고무신’. 전통적인 서정성이 두드러진다. 고무신은 생전의 어머니다. 말 못할 애틋함이 ‘국화 꽃잎’, ‘쪽달’로 옮겨가며 그리움의 정서를 환기한다. ‘정성’·‘정’·‘영생’ 같은 낡은 말을 새롭게 되살리는 노력을 포기해선 안 된다. 서경·백승만·김경숙·송인영씨의 작품을 아쉽게 놓는다.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박기섭·강현덕>

◆응모안내=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 그달 말 발표합니다. 늦게 도착한 원고는 다음 달에 심사합니다. 응모 편수는 제한이 없습니다. 연락처를 꼭 적어주십시오. 접수처는 서울 중구 순화동 7번지 중앙일보 편집국 문화부 중앙 시조백일장 담당자 앞(우:100-759).

이 한편의 시조

낮하늘엔 해가 뜨고 밤하늘엔 달이 뜹니다. 해는 감히 맨눈으로 바라볼 수 없을 만큼 강렬합니다. 반면 밤하늘의 달은 만만합니다. 뚫어져라 바라봐도 눈시리지 않습니다. 임신한 여인의 배처럼 충만한 듯 하다가도, 눈썹처럼 가늘어지며 그늘 뒤에 숨습니다.

강렬한 해에 비하자면 달은 수줍기만 합니다. 해가 밤에 뜨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달은 낮에도 뜹니다. 낮달은 보일 듯 말 듯 낮하늘에 조용히 스며듭니다. 강렬한 당신의 빛에 가려 보이지 않았을 뿐, 나는 늘 그 자리에 있었노라는 수줍은 고백을 내어놓는 듯합니다. 그런 낮달을 바라보는 순간, 해쓱한 얼굴 하나 둥실 떠오릅니다. 퍼뜩 내어놓는 건 ‘있어도 없는 듯이 그러능 게 아니’라는 원망 아닌 원망, ‘너를 잊었던 건 아니여 결코 아니여’란 변명 아닌 변명입니다.

왈칵 솟는 울음 꿀꺽 삼키는 조각난 마음. 토속적인 말로 이토록 아름답게 애틋함을 노래한 류제하(1940~1991) 시인의 명편을 추천한 이는 시조시인 이승은씨입니다. ‘낮달’은 3·4·3·4의 틀에 갇히지 않고, 초장·중장·종장 각 4음보씩 12음보에 맞춘 시조입니다. 시인의 앞선 실험정신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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