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민당 세도 저문다” 일본 관료사회 술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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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중의원 해산을 나흘 앞두던 지난 17일 도쿄 나가타초(永田町)에 있는 국회의원 회관. 단고 야스다케(丹吳泰健·58) 재무성 사무차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신임 인사를 하러 왔다”며 과감하게 민주당 의원들의 방을 잇따라 노크했다. 이날 그의 방문을 받은 한 소장파 민주당 의원은 “그동안 재무성과는 전혀 교류가 없었고, 재무성 간부의 방문을 받은 것도 처음이었다”고 밝혔다고 요미우리(讀賣)신문이 26일 보도했다.

일본 집권 여당인 자민당과 오랜 세월 권력을 휘둘러온 일본의 관료들이 정권교체 가능성에 당혹해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이 자민당을 누르고 제1당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권교체에 대비한 ‘보신책’이 속출하고 있다.

고위 관료들이 민주당 정권 출범 가능성에 대비해 바쁘게 움직이면서 ‘눈도장 찍기용 명함’을 살포하는 것은 기본이다. 민주당 의원이 없는 사무실을 찾아와 명함을 놓고 가는 관료들이 늘면서 지방 유세를 같다 오니까 50여 장의 관료 명함이 쌓여 있는 경우도 잇따르고 있다.

민주당 집권 후 고위 관료 물갈이에 대비한 ‘알박기 인사 조치’도 속전속결이다. 국회가 해산하던 21일 국토교통성은 관료로서는 최고위직에 있는 사무차관을 심의관으로 발령내고, 그의 동기생을 사무차관에 앉혔다. 자민당 정책을 지원해온 사무차관이 ‘숙청’당할 것에 대비해 한 급 낮은 심의원으로 ‘하향 인사조치’를 한 것이다. 사무차관 업무를 측면 지원하는 심의관은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반면 분위기 파악을 못해 옷 벗을 일만 기다리는 관료도 있다. 지난 6월 중순 농림수산성의 이데 미치오(井出道雄) 사무차관은 민주당의 핵심 농업정책에 대해 “현실성이 없다”고 밝혔다가 만회할 기회를 놓치면서 ‘숙청 1호’ 명단에 올랐다. 외교·안보·경제·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자민당 정책을 전면적으로 뒤엎을 생각인 민주당은 “우리 정책에 반대하는 관료들은 그만두는 수밖에 없다”며 이데 사무차관에 대한 응징을 공개적으로 벼르고 있다.

관료들의 ‘개점휴업’도 심각하다. 일본 정부는 국회 해산 직전 내년도 예산 개요를 작성했으나 민주당이 고교 무상교육, 아동수당 연내 실시 등 자민당과 180도 다른 정책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무용지물이 됐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집권하면 총리 직속의 ‘국가 전략국’을 설치해 예산 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칠 방침이다. 연립 자민·공명당 정권에서는 국회의원이 정부 부처의 대신·부대신·정무관 등 고위직 관료로 임명되는 숫자가 30여 명이지만 민주당은 100명으로 크게 늘려 관료사회를 장악한다는 공약까지 내놓고 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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