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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막전막후] ‘퀄컴 과징금 2600억’ 부과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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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공정거래위원회가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휴대전화 원천기술을 보유한 미국 퀄컴의 불공정거래 혐의에 대해 26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것을 두고 IT 업계가 떠들썩하다. 사상 최대 규모의 과징금도 놀랍지만, 그간 기술제공 대가로 국내에서 거둬들인 로열티가 4조원에 달하는 퀄컴의 독점적 지위 때문이기도 하다. 여기에 퀄컴을 신고한 업체가 국내 휴대전화 제조업체의 라이벌인 ‘노키아’에 부품을 제공하는 업체란 점도 묘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례적 기록 쏟아져=조사 기간만 3년에 이를 정도로 이번 건은 내용이 복잡하고 방대했다. 26일 공정위에 따르면 공정위가 전원회의에 제출한 의견서만 5000페이지가 넘는다. 퀄컴도 이례적으로 로펌 두 곳에 변호를 맡겼으며, 변호인단 수만 20명에 이른다. 미국 본사에서도 전문가를 파견해 전원회의 때는 동시통역 부스를 설치했다. 공정위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외부 전문가들의 대리전도 치열했다. 공정위에선 이인호(서울대 경제학)·홍대식(서강대 법학) 교수 등을 내세웠고, 퀄컴은 최재필(미국 미시간주립대 경제학)·정인석(한국외대 경제학) 교수 등을 끌어들여 공방을 벌였다. 그만큼 높은 수준의 경제분석, 법리 검토가 필요했다는 의미다. 특히 이번 제재가 주목을 받은 것은 예상을 뛰어넘는 과징금 규모 때문이다. 지금까지 최고 과징금은 1000억원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었다. 그것도 여러 회사에 함께 부과한 금액이다. 일각에서 ‘퀄컴에 대한 국내 반감 때문에 과징금이 컸다’는 뒷말이 나오는 이유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에 따라 퀄컴이 법 위반 행위로 인해 얻은 매출의 2.2% 수준에서 과징금을 산정했다고 밝혔다. 한철수 시장감시국장은 “그만큼 한국에서의 매출이 많고, 독점기간이 매우 길었다고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한국-퀄컴 동맹 깨려는 것”=이번 조사는 2006년 국내외 IT 업체들의 제보에서 시작됐다. 해외 제보 회사는 텍사스인스트루먼트와 브로드컴이다. 공교롭게도 세계시장에서 국내 업체와 경쟁을 벌이고 있는 노키아에 제품을 공급하는 회사들이다. 이 때문에 퀄컴은 “한국 업체와 퀄컴 간의 동맹관계를 깨려고 제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1990년대에는 노키아·에릭슨 등을 주축으로 하는 유럽통화방식(GSM)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이후 퀄컴과 삼성·LG전자가 CDMA 방식을 들고나오면서 이들의 아성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퀄컴코리아 차영구 대표는 “GSM 진영의 경쟁상대인 한국 기업들 또한 공격대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내 IT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이 퀄컴에 휘둘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퀄컴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긴 힘들다”고 말했다. 일단 퀄컴은 항소 입장을 밝히면서 치열한 법리공방을 예고했다. 공정위가 문제 삼은 리베이트는 마케팅 수단이며, 차별적인 로열티는 할인정책이라는 게 퀄컴의 주장이다. 이런 정책은 93년 정부와의 합의에 따른 조치며, 결국 한국 휴대전화의 가격을 떨어뜨리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철수 국장은 “가격할인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퀄컴의 거래 체계가 경쟁업체를 시장에서 배제하는 내용으로 돼 있기 때문에 위법”이라 고 설명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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