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의 종소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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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호 11면

여름비가 오락가락하는 날, 지리산학교 사진반 학생들과 화엄사에 갔습니다. 비가 와도 가자는 강력한 주장에 나선 ‘우중출사’입니다. 화엄사는 각황전과 네 마리 사자조각이 받든 삼층석탑을 비롯한 국보급 문화재가 즐비한 지리산 최대 사찰입니다. 엄중한 울림이 있는 큰 절입니다.
화엄사를 무겁게 덮은 비구름이 흩어지며 안개처럼 내려옵니다. 스멀스멀 젖어 드는 안개비 속을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걷습니다.
넋 놓고 걷는 어느 순간, “뎅, 뎅~ 뎅” 연이은 범종소리가 울립니다. 정오에 맞춘 열두 번의 울림이 온 산과 절에 퍼집니다. 숙연한 마음이 감동으로 머리끝까지 이어집니다. 절집에서 종교와 무관하게 깊은 마음을 느낀 순간입니다.

PHOTO ESSAY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촬영을 끝내고 절 앞을 흐르는 계곡을 건너 큰 바위에 홀로 앉았습니다. 불어난 계곡물이 바위를 들썩이며 숨 가쁘게 흘러갑니다. 거친 물소리가 절 앞 찻집에서 흘러나오는 명상음악과 몸을 섞고, 몰래 뿜는 담배 연기는 안개비와 몸을 섞습니다.
오늘 ‘깊은 울림’에 빠졌습니다.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깊은물’ ‘월간중앙’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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