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변화상 투영 '이발소 그림' 박석우씨 이색연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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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국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 '이발소 그림' .이발소 (퇴폐영업장은 제외) 벽면을 장식한 그 그림들은 불완전한 구도, 화려한 색채, 조잡한 배합에도 불구하고 과거 서민들에게 '색' 과 '빛' 의 미학을 알려준 창구였다.

서울 중산고교 미술교사 박석우씨. 그는 이발소 그림 연구로 5년전 인하대 대학원 미술교육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계속된 그림 수집과 이발소 탐방. 박씨는 이발소 그림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변화하는 우리의 사회를 본다.

이 땅에 이발소가 생긴 것은 단발령이 실시된 1895년 (고종23년) 무렵. 당시 서양식 인테리어로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은 이발소는 신사들의 명소이자 서양미술을 접하는 대중교육장이었다.

가장 흔한 그림은 밀레의 '이삭줍기' 나 '만종' .우리나라 시골과 다를 바 없는 사실적 풍경이 대중들에게 친근감을 자아냈다.

이발소 그림의 '스타' 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개화기 이후 인기 소재는 돼지. 한국사회가 자본주의 시대로 진입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돼지는 부귀.재력의 상징이기 때문. 권력을 나타내는 호랑이도 빈번하게 등장했다.

6.25 후에는 기지촌마다 생긴 미군을 상대로 한 초상화 가게가 이국 분위기를 풍기는 이발소 그림을 공급했다 70년대 새마을운동은 이발소 그림의 전환점. 이농현상이 늘어나면서 고향을 그린 작품의 인기가 높았다.

정겹고 따스한 산천초목, 초가와 물레방아 풍경,빨래하는 어머니 등등. 80년대에 들어서는 돼지 그림이 많이 퇴장하고, 대신 유명화가 작품을 모방한 그림이 앞으로 나섰다.

김창렬의 '물방울' 이나 이숙자의 '보리밭' 이 대표적 경우. 기성세대에게 보릿고개와 고향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보리밭을 얼마나 잘 그리느냐에 따라 대중작가들의 실력이 판가름났다.

90년대는 포스트모던 시대답게 여러 주제의 작품이 소통됐다.

아트 포스터.복제화.컴퓨터 사진 등. 기복신앙이나 실용성이 주가 됐던 그림에서 감상과 취미생활의 한 부분으로 대중미술의 역할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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