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안씨 부녀의 고집스런 에덴동산 프로젝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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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무튀튀 폐광에 ‘그린 재킷’

영국의 세인트 오스텔시. 이곳은 폐광촌이었다. 지역 1인당 총생산이 영국 평균의 60%에 불과했다. 참다못한 시민이 직접 나섰다. 15만㎡ 규모의 폐광산 부지를 사들여 식물원을 조성했다. 식물원은 ‘에덴동산’이라고 불리며 인기를 끌었다. 2001년 개장 후 벌어들인 돈은 대략 7억 파운드(한화 1조4000여억 원). 폐광이 금맥으로 되살아난 사례다.

1989년 에너지 정책의 전환으로 국내 석탄 산업이 기로에 섰다. 폐광이 속출했고, 지역경제는 덩달아 움츠러들었다. 영국 오스텔시 같은 성공 사례를 만들면 어떨까.

강원도에선 지금 한국판 ‘에덴동산 프로젝트’가 한창이다. 천연비누 전문기업 미현재는 태백시 통동에 있는 옛 한보탄광 부지 560만㎡에 녹색단지를 조성 중이다. 부지매입은 물론 인허가도 마쳤다. 올 4월 태백시와 천연단지 개발사업 관련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일본 천연기업 ‘생활의 나무’와 기술제휴도 마쳤다.

천연단지 조성부지 중 허브재배 면적은 99만㎡. 여기엔 세계 각지에서 자생하는 3000여종의 허브를 선별해 8월 중순부터 심는다. 재배면적은 일본의 대표적 천연단지 ‘팜 도미타’(24만7500㎡)의 4배에 이른다.

재배면적을 제외한 나머지 461만㎡엔 숙박시설·체험실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전체 사업비는 3850억원에 달한다.

갱도 재활용할 계획이 이채롭다. 한보탄광은 국내에선 드물게 수평갱도가 많다. 총 42㎞ 중 2.7㎞가 평평하다. 미현재는 이곳에 갱도 관광열차를 운영한다. 헐리웃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착안한 구상이다.

한보탄광의 리모델링을 제안한 것은 안 대표의 부친 안종범 전 대한석탄협회장이었다. 한보광업소 대표로 재직 중이던 안종범 전 회장은 2005년 극심한 경영난에 속앓이를 했다. ‘그냥 가느냐 감산 하느냐….’ 안 전 회장이 폐광 대체산업을 구상한 것도 이런 이유다. 처음엔 유수의 컨설팅 업체에 용역을 맡겼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십중팔구 골프장·리조트 사업.

그가 바란 것은 획기적 사업 아이디어였다. 안 전 회장은 맏딸 안 대표에게 SOS를 쳤다. 안 대표는 사내에 TF팀을 만들고 장고를 거듭했다. 안 대표는 TF팀 관계자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허브단지 어떨까요?” 직원들은 손사래를 쳤다. 안 대표는 뜻을 접지 않았다.

안 대표는 탄광 리모델링 사례를 찾아 나섰다. 2년 후인 2008년, 안 대표와 TF팀 관계자들은 일본 후라노(富量野)에 있는 천연단지 도미타 팜 성공사례를 발견했다. 이들은 매년 100만명에 이르는 관광객이 이곳을 찾는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더구나 이 단지는 일본의 대표적 탄광지 유바리(夕張) 인근에 있었다.

안 대표는 무릎을 쳤다. 한보탄광의 조건과 꼭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글=이윤찬 이코노미스트<기자ㆍchan4877@joongang.co.kr>
사진=오상민 기자

※ 상세한 내용은 27일 발간되는 이코노미스트(998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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