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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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제5장 길 끝에 있는 길

"임자 나하고 동업할 의향이 없나?" "지금 내보고 뭐라캤소? 동업하자꼬요? 택도 없는 소리. 내가 신변 정리할 일도 있고 생각도 할 일이 있어서 주문진에 남아 있는 게지, 우리 행중에서 퇴출당한 줄 알아요?"

"퇴출당하지 않았다는 건 나도 충분히 알고 있네. 그런데도 이런 말 하고 있는 내 심정을 이해할 수 없겠나? 내가 보기엔 임자가 미련해도 한참 미련한 사람이야. 승희가 어째서 한철규라는 사람을 따라다니고 있는지 임자 알구나 있어? 그 내막을 알아챈다면 임자가 그 떨거지들과 동고동락한다는 것이 소가 들어도 웃음거리 될걸세. "

"웃음거리가 되고 안되고는 내 사정이지 형님 사정이 아니잖습니껴. " "이봐, 세상엔 비밀이란 없다는 것을 깨달았네. 내가 알아낸 한철규의 비밀을 임자한테만 알려주지. 한철규란 위인이 주문진에 당도하고난 뒤 며칠 지나지도 않았어. 변가란 놈이 뚜쟁이 노릇 해서 철규와 승희가 오대산 민박집에서 같이 잔 일이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겠지? 물론 임자하고 동거하기로 합의하기 전의 사건이었지. 하지만 그 이후로 승희의 마음이 임자로부터 멀어진 원인이 되었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그거 확실한 얘기라요?" "거짓말이면 내 목을 따게. 뉘 앞이라고 감히 거짓말을 하고 있겠나. 불의를 보고 참지못하는 임자의 성깔을 손금 보듯 꿰뚫고 있는 내가 헛소리를 지절거리고 있을까?"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아무런 소동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얗게 질린 봉환의 시선은 오랫동안 창 밖으로 바라보이는 선착장에 머물러 있었다.윤종갑의 말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의 말대로 감히 뉘 앞이라고 근거없는 얘기를 할 수 있을까. 그동안에 있었던 승희의 행동으로 봐서도 한철규와의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었다는 것은 증명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가슴속을 모조리 자갈돌로 채운 것처럼 답답했다.

봉환은 자신도 모르게 소주병을 들어 식탁 모서리를 내려쳤다.

병이 두 동강 나면서 유리파편이 튀었다.

깨어진 소주병을 윤종갑의 목덜미에 갖다 대고 있는 봉환의 입에서 침 버캐가 튀고 있었다.

"만약 지금 한 말이 새빨간 거짓말로 탄로 났을 때는 피비린내 나는 보복이 있을 것이란 것은 각오가 되어 있겠지요? 당신이 도망가면 이 박봉환이가 끝까지 뒤따라가서 두 번 다시 사람행세 할 수 없도록 요정을 내버릴 것이란 것도 알고 있겠지요?"

"그런 각오 없이 발설을 했을까. 거짓이라면 그땐 자네 내키는 대로 하게. " 봉환은 손에 들고 있던 병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식탁 위에 있던 맥주컵을 내밀었다.

"형님이 한 컵만 부어 주소. " "고정하시게. " "행패 부리지 않겠다고 약속한 일 잊었뿌렀어요?" 맥주잔에 가득 채운 소주를 단숨에 들이켜고 빈잔을 내려놓는 봉환의 손이 사시나무 떨듯 하였다.

그는 시뻘건 눈으로 윤종갑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내하고 동업하자는 말은 우리 두 사람이 뭉쳐서 어제까지 형님 아우 하던 사람들에게 보복을 하자는 얘깁니껴. 아니면 나를 이용해서 형님이 앙갚음을 하자는 것입니껴?"

"말 한 번 딱 부러지게 하네. 우리 두 사람의 포원을 풀자고 한다면 잘못된 말인가? 그럼 임자는 맑은 하늘에 날벼락을 맞고도 쥐 죽은 듯이 앉아 있을 텐가? 변가란 놈의 농간에 머저리가 되고 철규란 놈에게 계집 도둑질까지 당하고도 그 수하에서 장짐이나 나르는 웃음거리가 되어야 하겠다는 겐가? 임자가 쓸개없이 태어난 병신이라면 모를까. 사람의 형용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라면 임자의 인생 진로에 막대한 손실을 끼치고 한평생의 포원을 남긴 사람을 황달이 붕어 들여다보듯 뻔히 바라보고만 있을라나?"

(김주영 대하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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