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 축구쇼 '유쾌한 반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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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승부는 치열했다. 그리고 결과는 달콤했다.

한여름 밤 수원 월드컵경기장은 축구의 열기 속으로 녹아들었다. 수원 삼성이 29일 스페인 명문 클럽 FC 바르셀로나 초청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했다.

후반 32분, 수원이 아크 오른쪽에서 프리킥을 얻었다. 골대와의 거리는 35m 정도. 후반 교체 투입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출신 우르모브가 힘차게 킥을 날렸다. 긴 직선을 그리며 미사일처럼 날아간 볼은 크로스바 오른쪽 끝에 맞은 뒤 골문 안쪽으로 떨어지며 그물에 휘감겼다. 경기장은 천둥 같은 함성으로 진동했다.

▶ FC 바르셀로나의 수퍼스타 호나우디뉴(오른쪽에서 둘째)가 김진우.조성환.서정원(왼쪽부터) 등 세명의 수원 삼성 선수에 둘러싸인 채 발끝으로 볼을 컨트롤하고 있다.(수원=오종택 기자)

후반 37분, 이번에는 바르셀로나가 아크 왼쪽 비슷한 거리에서 프리킥을 얻었다. 키커는 호나우디뉴. 오른발로 휘어 찬 볼이 골 네트에 꽂히기 직전 수원 골키퍼 김대환이 몸을 날리며 잡아냈다.

경기가 끝날 무렵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흥분했다. 자존심이 크게 상한 듯했다. 프랑크 레이카르트 감독은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려다 심판의 제지를 받았다.

90분을 교체 없이 뛴 세계 최고 몸값의 호나우디뉴는 과연'축구의 예술가'였다. 발목 부상으로 선발 출전이 불투명했던 그는 트레이드 마크인 현란한 발재간을 보였다. 춤추듯 부드러운 스텝, 곡예하듯 능란한 드리블, 상대의 의표를 찌르는 칼날 패스. 두 겹 세 겹의 집중 마크를 받으면서도 흥분하지 않고 오히려 넘어진 선수를 일으켜주는 스포츠맨십도 발휘했다.

바르셀로나는 후반 체력 열세를 드러냈고, 신입 선수들과 기존 멤버 간에 호흡이 잘 맞지 않았다. 유로 2004에서 3골을 뽑은 헨리크 라르손(스웨덴)과 2003~2004 챔피언스리그에서 AS 모나코(프랑스)를 준우승으로 이끈 루도비치 지울리가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처음 뛰었다. 수원은 3000여'그랑 블루'서포터스의 열렬한 응원 속에 침착하고 자신있게 경기를 이끌었다. 후반 김동현이 두 차례 완벽한 기회를 놓친 게 아쉬웠다.

경기가 끝나자 바르셀로나를 응원하던 일부 팬이 심판 판정에 항의하며 물병을 그라운드에 집어던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관중은 당당하게 승리한 수원 선수와, 축구의 묘미를 보여준 바르셀로나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경기 후 수원 차범근 감독은 "유럽 명문팀과 좋은 축구를 할 수 있었다는 게 감격스럽다. 우리 팀뿐 아니라 한국 축구에 자신감을 줬다"고 승리 소감을 밝혔다. 레이카르트 감독은 목이 아프다는 핑계로 회견장에 나오지 않았고, 테카트 코치는 "수원의 승리를 축하한다. 새로 영입한 7명의 선수가 닷새 전에 합류해 손발을 맞추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수원=정영재.강혜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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