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팀 보잉의 설계 잘못 지적할 정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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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날개 끝에 결합되는 레이키드 윙 팁. 대한항공 엔지니어가 직접 설계했고, 전체가 탄소섬유 계열인 복합물질로 이뤄져 있다.

이코노미스트 차세대 최첨단 항공기인 보잉사의 B787의 6개 구조물을 만드는 곳, 현재 운항하고 있는 최신형 항공기인 B747-8의 핵심 구조물을 만들어 인도한 곳,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공군의 F-15 전투기들이 정비 받기 위해 모이는 곳, 그리고 세계 2위 항공사(여객수송거리 기준)인 유나이티드항공이 보유한 모든 B747 항공기가 정비하러 오는 곳….

차세대 항공기 B787 날개 만드는 대한항공 테크센터 #전 세계 19개뿐인 1급(Tier-1) 파트너 … 해외 미군기 정비해 달러 벌어

부산 김해공항 옆에 위치한 대한항공 우주항공사업본부의 테크센터에 대한 설명 중 일부다. 지난 2일에는 테크센터에서 미국 보잉사가 개발하고 있는 최신 항공기 B747-8의 핵심 구조물인 ‘주익연장날개’(Wing Tip Extension) 등 날개 구조물을 개발 완료해 보잉사에 납품한 것이 일부 언론에서 뉴스로 다뤄졌다.

하지만 1987년부터 B747 날개 구조물을 납품해 오고 있었던 대한항공 관계자들은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대한항공 테크센터는 1976년에 설립되어 지금까지 7300억원 이상이 투자된 항공우주사업본부의 사업장으로 대지 총 70만7866㎡(약 22만 평), 연건평 26만6180㎡(약 8만 평) 규모로 6900여 종의 장비와 1만9000종 이상의 치공구(고정용 공구)를 비롯해 항공기 생산에 필요한 각종 시설 및 장비를 완비하고 있다.

테크센터를 통해 대한항공은 항공기, 항공기 부품 제작, 항공기 정비 및 성능 개량, 우주개발, 무인기 개발 등 다양한 제조업을 하고 있다. 최근 대한항공 테크센터는 차세대 항공기인 B787 드림라이너의 6개 구조물 제작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1987년부터 보잉사의 다양한 기종 제작에 참여해 온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B787 드림라이너는 기존의 항공기 제작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금까지 항공기 동체는 알루미늄 합금 등 금속합금을 이용해 왔지만 드림라이너는 비금속 복합소재를 동체로 사용한다. 주로 탄소섬유 계열이나 유리섬유 계열인데 소재가 달라지면서 성형 방법이나 제작방식 등이 확 바뀌었다. 항공우주사업본부의 김성근 과장은 “금속합금은 유선형으로 가공하는 데 한계가 있지만 복합소재는 가공성이 뛰어나 항공기 동체의 이음새를 줄임으로써 공기저항이나 강도가 뛰어난 대신 내부의 균열이나 갭(gap) 등이 있을 수 있어 고도의 기술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내부 균열이나 갭 등 불량만 없다면 복합소재는 단위면적당, 같은 밀도당 강도가 높다. 금속합금보다 강도가 높은 구조물이라는 뜻이다. 6개 파트를 맡은 대한항공은 후방동체(AFT body)를 보잉의 파트너사 중 처음으로 이음새 없이 하나의 구조물로 만들어 냄으로써 기술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에서 대한항공이 날개 끝 구조물인 ‘레이키드 윙 팁(Raked Wing Tip)’에서 1급(Tier-1) 파트너 자격을 획득한 것은 의미가 크다. 레이키드 윙 팁은 항공기의 연료효율을 높이고, 조종성을 극대화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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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미군기지에서 부산에 있는 대한항공 테크센터로 정비 받으러 온 F-15 전투기.

행기 정비 위해 홍콩에서 날아와

대한항공 측은 “1급 파트너는 사실상 설계나 구조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고, 제작환경이나 엔지니어의 자격요건 등이 보잉사와 같은 수준에 있다고 판단되는 업체에만 부여된다”고 설명했다. 이번에도 대한항공 설계팀에서 실제 설계를 해보니 최초 설계요건이 잘못돼 문제점을 개선해 보잉사에 새로운 설계요건을 주기도 했다.

4급 파트너가 보잉사에서 준 설계도면 조건에 의해 단순 하청 생산을 한다면 1급 파트너는 사실상 설계부터 제작, AS까지 책임지는 대등한 파트너다. B787 제작에 참여하는 파트너사 중 1급 파트너는 전 세계에 19개밖에 없다. 또 비교적 넓은 자율성 덕에 1급 파트너는 보잉사에서 요구하는 품질만 만족시켜주면 원가절감이나 생산방식 혁신에 의해 이익을 늘릴 수도 있다.

대한항공은 이미 2006년부터 B787 구조물을 보잉사에 납품하고 있다. 이 외에도 보잉사와 세계시장을 양분하는 유럽의 에어버스사에도 동체구조물을 납품한다. A330/340의 동체구조물은 물론 최신예 기종인 A380 여객기의 날개구조물과 A350 화물기 도어(door) 등이 그동안 대한항공 테크센터에서 만들어져 납품됐다.

브라질의 중형항공기 업체인 엠브레어의 EMB170/190 등의 중앙동체도 제작 납품하고 있다. 부품 제작뿐 아니라 민간, 군용 항공기 정비 및 성능 개량에서도 대한항공 테크센터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기자가 방문한 지난 22일에도 격납고에서 유나이티드항공 소속 B747기가 좌석 교체 정비를 받고 있었다.

비즈니스석과 퍼스트클래스석을 신형 좌석으로 교체하고 항공기의 C체크(경정비)를 수행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대한항공은 자사 비행기 외에 2005년부터 5년간 유나이티드항공의 B747 항공기 전체의 정비 및 성능 개량 작업을 수주해 지난 3월까지 100대의 항공기를 정비 및 성능 개량 후 출고했다.

정비팀 관계자는 “미국 내에도 여러 정비 업체가 있지만 대한항공이 정비 품질과 스피드에서 뛰어나 한국까지 와서 정비하고 간다”고 설명했다. 정비가 필요한 유나이티드항공 소속 B747 항공기는 미국~홍콩 노선에 투입된 후 홍콩에서는 빈 비행기로 김해공항까지 날아와 정비하고 돌아간다.

정비를 받으러 빈 비행기로 올 정도로 가격 경쟁력이 뛰어난 것일까? 대한항공 측은 “뛰어난 정비 품질과 함께 TAT(Turn Around Time: 정비 후 다시 비행하기까지 걸리는 시간)가 짧아 유나이티드항공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익”이라고 말했다. 대당 1500억~2000억원 정도 나가는 B747 항공기는 지상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항공사로서는 손해가 커지기 때문이다.

D체크(중정비)나 성능 개량 작업은 비행기의 골격을 제외한 모든 부분을 새로 만드는 수준이다. 건물에 비유하면 리모델링에 해당한다. 때론 엔진까지도 교체한다. 유나이티드항공을 비롯해 여러 항공사의 여객기가 월 10대 정도 이곳에서 정비를 받는다.

무궁화·아리랑 위성 제작도 참여

민간 항공기뿐 아니라 전투기, 헬기, 수송기 등 군용기도 이곳에서 정비를 받는다. 주로 주일 미군이나 해외 주둔 미 공군의 비행기들이다. 일본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는 미 공군의 F-15 전투기들은 부산에서 정비 및 성능 개량을 한다. 또 일본 미자와에 있는 주일 미군 F-16 전투기들도 정비를 받으러 대한항공 테크센터로 날아온다.

물론 오산과 군산 등에 있는 주한미군의 F-16, A-10 공격기 등도 당연히 이곳에서 정비 및 성능 개량을 한다. 이 외에도 미 해병대의 수송헬기인 CH-53은 오키나와는 물론 하와이나 이라크에서도 이곳으로 정비를 받으러 온다.

군용기 공장장인 김종하 상무는 “군용기 정비는 미국 본토에 있는 미군기지 및 정비 업체, 세계 각국에 있는 군용기 전문 정비 업체와 글로벌 경쟁을 하고 있다”면서 “물품을 수출하지 않지만 정비를 통해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는 엄연한 수출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대한항공 우주항공사업본부는 이 외에도 항공기 제작, 개발, 우주개발, 무인기 개발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다. 독자기술로 5인승 민간 항공기 창공91을 개발했고, 무궁화·아리랑 위성의 본체 및 태양전지시스템 등도 설계·제작했다. 이런 다양한 사업을 통해 우주항공사업본부는 지난해 3677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며 올해는 500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한항공 측은 “내년까지 항공기 부품 및 정비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품질 및 가격경쟁력을 갖출 것”이라며 “2015년에는 매출 1조2000억원의 세계적인 항공기 관련 제작업체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부산=이석호 기자·luk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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