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98년 논술고사 우수답안의 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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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서울대 98학년도 논술고사는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 의 한 장면을 지문으로 제시하고 있다.

내용은 '복서' 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로 인간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가지 문제를 암시하고 있다.

출제자는 여기에서 어떤 문제들이 암시돼 있는지 지문의 내용에 근거하여 밝히고 '복서' 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각자의 견해를 논술하라고 요구했다.

다음은 서울대가 제시한 우수 답안 5개 유형 가운데 하나다.

(자세한 논제.지문.답안 유형은 인터넷 중앙일보 <www.joongang.co.kr> 참조. )

카를 포퍼라는 사회학자가 쓴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이라는 저서는 '닫힌 사회' 와 '열린 사회' 를 극명하게 대비하고 있다.

열린 사회와는 달리, 닫힌 사회에서는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과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사회의 정보와 지식,가치관이 일부 계층에 의해 왜곡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수많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고 그 사회 안에서의 개인의 삶과 죽음 역시 왜곡될 것임이 분명하다.

제시문으로 나온 오웰의 소설 '동물 농장' 은 그 문제점들을 선명하게 형상화해서 보여준다.

먼저 이 동물 농장은 외부와 교류가 거의 없고, 지배층인 돼지가 정보를 통제하고 왜곡시키기 때문에 그 주인들은 세상에 대한 왜곡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복서라는 말이 '더 열심히 일하자' 는 말과 '나폴레옹 동지는 항상 옳다' 는 말을 되뇌이며 보상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힘든 노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왜곡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왜곡된 가치관을 피지배층에게 심어놓기 위해 지배층인 돼지들은 피지배층인 동물등을 기만한다.

복서가 윌링턴의 수의사에 의해 잘 치료될 것이라는 돼지들의 대변인격인 스퀼러의 말이나 복서의 도살을 숨기고 오히려 지배층의 논리를 강조한 돼지의 우두머리 나폴레옹의 거짓말이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주체적 사고를 할 능력마저 잃어버린 동물 농장 주민들은 왜곡된 가치관을 수용하고 기꺼이 착취당한다.

심지어 자기의 동족들을 도살하러 가는 마차를 끄는 짐말들처럼 지배층의 도구로 쓰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배와 착취 구조는 교육을 통해 대물림된다.

새끼 돼지들의 교실을 짓는 복서는 정작 알파벳을 네 글자밖에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바로 지식의 불평등한 분배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글도 능숙하게 읽을 줄 아는 벤자민같은 지식인은 지배층의 탄압 때문에 아무 말없이 있을 뿐이다.

이렇게 비판 세력을 꺾은 지배층은 거칠 것 없이 부도덕한 일을 저지른다.

그들을 위해 일한 복서를 판 대금으로 위스키 파티를 벌인 돼지들의 행동이 바로 그것이다.

정보의 통제로 인해 소수의 이익을 위한 다수의 착취가 용인된다는 이 점이 곧 닫힌사회의 문제점인 것이다.

이러한 사회 안에서 한 사회 구성원의 삶과 죽음은 그 자신에게서 소외된 것이다.

복서가 지닌 능력이라면, 그는 더 나은 삶을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는 농장안에서 가장 강한 힘을 가진 동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그에게 주입된 지배층을 위한 가치관 때문에 자신의 삶을 선택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

심지어 죽음까지도 그의 의사와 상관없이 지배층인 돼지들을 위해 도살이라는 처참한 일을 당해야했다.

즉, 그의 것인 삶과 죽음이 지배층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그에겐 어떠한 선택의 힘도 없었다는 점에서 복서는 소외된 것이다.

그리고 소외된 죽음은 허망한 것이고 불필요한 희생이다.

정보를 통제하고 왜곡시키는 닫힌 사회는 그 사회 구성원의 삶을 소외시키고 평등한 관계를 불평등한 관계로 타락시킨다.

오웰은 이 소설을 스탈린 치하의 공산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썼지만, 아직 권위주의와 반공 이데올로기의 잔재가 남은 우리사회에도 여전히 그의 지적은 유효할 수도 있다.

더 이상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복서의 죽음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닫힌 사회를 경계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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