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위기에 경제학자들도 한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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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지난 30년간 거시경제학의 많은 부분은 잘 얘기해봤자 형편없이 쓸모없었고, 나쁘게 말하면 명백하게 해로웠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6월 런던 정경대(LSE) 강연에서 한 말이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근호는 현대 경제이론의 위기를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이 잡지에 따르면 거시경제학자와 금융경제학자는 세 가지 측면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금융위기를 초래하는 데 일조를 했고, 위기를 예측하는 데에 실패했으며, 위기 극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제학자가 위기를 불렀다는 주장이 반은 맞다. 중앙은행에서 일하는 거시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을 막는 데 너무 집착했고, 자산 거품에는 무관심했다. 금융경제학자는 시장의 효율성을 교조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시장의 자기조정 기능을 지나치게 신뢰하거나 금융 혁신은 언제나 선(善)이라는 관념을 퍼뜨렸다. 월가의 소위 ‘돈 버는 비법’은 모두 이런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해서 나왔다. 조셉 스티글리츠처럼 시장의 효율성에 문제를 제기한 경제학자도 많았지만 대체로 견제 역할을 하는 데 실패했다.

예일대의 로버트 실러나 뉴욕대의 누리엘 루비니 등 미리 위기를 경고한 학자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경제학은 위기 예측에 실패했다. 자기 분야만 파고드는 전문가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는 정책 수단이 바닥나게 만들었고, 정책 집행자의 상상력을 위축시켰다. 금융경제학자 대부분은 ‘돈맥경화’ 현상이나 거래 상대방에게서 오는 위험을 가볍게 여겼다. 자산시장 전체가 동시에 얼어붙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위기 극복 방안에 대한 학계의 불협화음도 심하다. 크루그먼 같은 케인시안은 무비판적으로 재정 지출을 옹호한다. 반면 시장을 중시하는 고전파적인 입장에 서 있는 학자들은 공개적으로 이를 반박한다.

이코노미스트 최근호는 경제학자가 자기 전문 분야를 벗어나 시야를 넓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거시경제학자는 금융을 이해해야 하며, 금융학자는 시장의 작동 양상에 대해 더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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